조급함과 솔직함 사이에서
* 이사라 마오 시점
* 약 리츠마오 있음
* 전반적인 세나나루
이곳은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더러 문제가 있는 곳이었다. 대개 제 감정에 취해서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쓰지 못해 생기는 문제이긴 했지만, 문제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에게 그런 사실은 ― 당연하게도 ― 무시되는 부분이었다. 그 문제에는 『Knights』 역시 피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조금 더 예를 들어보자면 안 싸우던 사람들이 싸운다는 것 정도였다.
『Knights』에서는 새로운 리더를 결정했다는 보고가 올라오지 않았고, 나는 그것을 받아내기 위해 갔다.
“오라고 해서 곧잘 받을 녀석들이 있는 곳도 아니고…….”
그때까지는 왜 그렇게 말하는 지 몰랐다. 하지만 선배라는 사람들의 말은 주의 깊게 들을 필요가 있었고, 나는 정말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계단을 돌아 만나러 가는데, 멀리서부터 소리가 들렸다. 제법 큰 소리였다. 중재자로의 본능이라는 것이 이렇게 쓸모가 없는 것이라는 것도 그때 느꼈다. 나는 급히 발걸음을 옮겼고, 마음이 바빴다. 탁탁탁하고 실내화가 바닥을 치는 소리가 최대한 나지 않게 뛰려고 하자 속도가 거슬렸고, 속도를 내보자니 소리가 거슬렸다.
언뜻 들어도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요란하게 다가갈 필요가 없으니까 말이다. 리츠녀석은 뭐 하고 있는거야. 애당초에 싸움을 말릴 정도로 인간관계에 애정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럴 때 중재할 정도로 사람이 되지는 않았던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뛰다 보니 어느새 싸움의 근원지에 도착해있었다.
문은 약간 열려있었다. 비밀 보장을 위해 닫아주면 좋았겠지만, 『Knights』 연습실의 문에서 삐그덕 소리가 나서 자는 데 거슬린다던 리츠의 말이 생각나 쉽게 그러지 못했다. 진작 들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사람은 언제나 후회를 한다고 했던가? 늙은이 같았던 말이 때로는 도움이 될 때도 있구나, 했다.
좁은 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누가 싸우고 있는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저렇게 몰아치는 소리와 대꾸도 하지 않는 말. 세나 선배와 나루카미 정도밖에 없지 않나. 아마 전체를 통틀어서 찾아보아도 저렇게 세나선배의 말에 대꾸하지 않는 녀석은 나루카미밖에 없으니까. 하물며 리츠도 종종 대꾸는 했으니, 정말 강심장이긴 했다.
말릴까 했지만, 두 사람 사이에 어떻게 끼어들지 몰라 가만히 있을 『Knights』의 멤버들을 생각하니, 더 쉽게 끼어들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선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아서이기도 했다. 하물며 세나 선배와 격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도 세나 선배와 나루카미의 관계에 대해서는 종종 떠들고 다녔으니까 말이다.
아. 돌아갈까? 하던 차에 리츠랑 눈이 마주쳤고, 그냥 이 자리에 서있기로 했다. 보고 있으라는 건가? 나는 어깨를 으쓱였고, 리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있어서 좋을 게 뭐가 있다는 건지.
* * *
두 사람의 싸움은 제법 사나웠다. 세나 선배는 뭐가 그렇게 급한지 할 말, 못할 말을 다 내뱉는 것 같았다. 화풀이인가? 학생회는 생각보다도 평화로운 곳이라서, 차라리 웃음이 났으면 났지 저런 종류의 화풀이는 없었다. 리츠 녀석, 대단한 곳에서 잘도 살아 있었네. 리츠에게 대견함을 느끼던 시간도 잠깐이었다. 곧 나루카미가 날카롭게 웃기 시작했다.
“이즈미쨩, 어리잖니. 이렇게 화풀이를 해서 되겠어?”
와. 짐작은 했었지만 이렇게 보니 정말 지난 한 해가 무사히 지나갔구나 싶긴 했다. 애초에 우리 교실에는 세나 선배만큼 나루카미를 긁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지만.
“하? 지금 어리다는 말로 또 대충 넘기겠다는 거? 어린 건 오히려 나루군쪽 아닌가? 지금 결정을 해야 한다고 하잖아. 왜 애초에 너희들도 다 이 종이 한 장 못 써서 이러고 있는 건데? 왕님도, 말 좀 해보지?”
내가 받으러 온 그 종이가 문제였구나. 리츠가 기다리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있는 맥락이었다. 누구를 적어서 낼지는 쉽게 결정했을 것 같은데……. 다른 유닛의 사정을 혼자 셈해보고 있는데 대화가 이어졌다.
“세나, 나루가 알아서 한다잖아? 급하게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그렇지?”
천하태평한 리더, 아니 이제 곧 전(前) 리더겠구나. 정말 정체 모를 사람들의 알 수 없는 모임이라고 생각했다. 제법 끈끈하게 이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 정도는 아닌가?
“그러게. 셋쨩, 너무 조급해하는 거 아니야? 낫쨩이 어디 도망간다고 한 것도 아니고~. 시끄럽잖아. 얼른 스쨩의 이름이나 적어서 내자. 셋쨩도 동의하는 거 아니었어?”
“동의는 하는데―.”
세나 선배의 목소리가 한결 누그러졌다. 하긴, 아까같이 소리를 지르는 게 더 이상하긴 하지. 어떤 면에서 보면 세나 선배와 나루카미는 정말 환상적인 조합이기는 하다. 다른 사람들과 붙어 있을 때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그런?
“셋쨩, 그렇게 몰아붙이면 낫쨩이 상처받을지도~.”
“하? 애초에 상처는 이쪽이 더 받았어도 받았거든? 대체 오늘따라 왜 그렇게 아니꼽게 보는 건데?”
“어머, 이즈미쨩. 말이 너무 가볍잖니. 이즈미쨩이 기분이 안 좋아서 그렇게 느낀 건데 왜 나한테 화풀이일까? 오늘 유우키군을 보지 못하기라도 한 거니?”
“거기에서 또 왜 그 얘기가 나오는데?”
“그렇잖아. 안 그래?”
와. 오늘 몇 번이나 감탄하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나루카미가 손에 얹어놓고 보고 있을 세나 선배는……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이미지구나. 세나 선배의 속을 저렇게 긁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싸움, 대체 왜 난 거지?
들어보니 애초에 리더도 정해졌고, 그냥 종이를 써서 갖다 줬으면 되는 일이었다. 잘은 안 보이지만, 종이에 이미 이름도 적혀있는 것 같고. 뭐가 문제지?
“오늘 갑자기 들어와서 이즈미쨩이 그렇게 신경질을 내면, 나도 기분이 좋지는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지 않아? 꼭 나를 더 화나게 할 사람처럼 굴다니, 이즈미쨩 심술이 너무 심했어.”
학년 초에 봤던 나루카미와 요즘의 나루카미의 이미지가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이야 했지만, 이 정도로 달라졌을 줄은 몰랐다. 아니, 애초에 세나 선배한테는 저러나? 나 원, 알 수가 없으니 도저히 말릴 수도 없고.
“나루군 요즘 생글생글 웃기만 하잖아? 내가 졸업하니까 눈엣가시가 없어져서 기분이라도 좋나 보지?”
아. 방금 건 탄식 정도. 세나 선배가 저런 거에 기분 나빠할 거라곤 정말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감정적인 대상이 또 있었다니, 아니 애초에 세나 선배가 마코토 말고도 이렇게 감정적이었나. 그것도 사실 감정보다는 맹목적인 추종, 이런 거였던 거 같은데.
“억지야.”
나루카미의 한 마디에 나도 맞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하마터면 말까지 나올 뻔했는데, 조심해야지. 이런 나를 보고 리츠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어이, 이봐 리츠. 좀 말려 보라고.
그래서 나는 고개를 저으며 리츠에게 팔로 X를 그려보였다. 이제 그만 말릴 때도 되지 않았어? 그런데 오히려 리츠가 고개를 저었다. 저대로 두자고?
리츠와 짧은 신호를 몇 번 주고받는 사이에 소리는 더 커졌다. 와, 이러다가 누구 한 명 울겠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정말 울음 소리가 났다. 이 싸움에서 적어도 나루카미가 울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 울며 말리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우는 쪽은 세나 선배잖아. 세나 선배는 졸업이 그렇게 서운했나. 울기 시작하더니 우는 소리로 막 뭐라고 한다. 못 알아듣겠어.
그리고 이건 절대적으로 지켜줘야 할 비밀 같은 거였다. 리츠 녀석, 세나 선배가 울 거라는 거 알고 기다리라고 한 건가? 아무튼 울먹이는 소리로 또 나루카미에게 뭐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알아듣기는 힘들었지만, 대충 들리는 몇 단어로 짐작해보자면 서운하다, 이런 내용인가. 서운할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졸업하고 떠나는 것을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말이야. 두고 가는 입장에서 서운한가. 어쨌든, 나루카미에게 저러는 세나 선배는 조금 신선한 충격이긴 하다.
“서운하면 서운하다고 말을 해야지 이즈미쨩. 그러니까 어리다고 하는 거야. 이즈미쨩은 한 번이라도 나한테, 우리한테 직접 말한 적이 있니? 맹세코 없다고 생각하는걸.”
와. 말 잘 한다. 감탄하는 사이에 세나 선배는 답답했는지 얼굴에 열이 오르고, 더 우는 것같아 보였다. 뭐, 말을 해야 아냐. 그런 사이냐 하는데, 저기. ‘그런 사이’라니. 꼭 얼굴만 봐도 다 아는, 그러니까, 밤에 불 다 꺼놓고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더 듣기에는 민망한 소리가 날 것 같아서 자리를 피하려고 하는데, 들으면 안되는 이야기를 들어버렸다. 리츠 녀석. 내가 고개를 숙이고 겨우 얼굴을 식히고 뒤를 돌려고 하는데 왜 그렇게 크게 말하는 거야.
“하긴. 셋쨩이랑 낫쨩은 밤에도 별말 없이 다 한다고 했지~. 말을 하지 않아도 만족스럽게 보내는데, 생각해보니 낫쨩이 심한 것 같기도.”
이어지는 소리는 정말 듣고 싶지 않았다. “나도 마~군이랑 그러면 좋을 텐데. 부러워.” 따위의 말을 할 필요는 없잖아. 나는 소리를 내지 않고 뒤를 돌아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부회장이 전화를 걸어 아직도 『Knights』는 우왕좌왕이냐고 물었다. 그것보다는…… 사랑싸움 중인 것 같아서요, 끼어들기는 무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