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타케히카] 사소한 거리감

POSTED ON 2020. 10. 11. 15:53

원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도 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겨우 여덟 살이던 시절의, 어릴 적의 패기에 가까운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모하고 무책임한 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은 이후 매번 타케루를 성장하게 했다. 그리고 매 순간 '무책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때마다 타케루는 스스로가 히카리에게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너를 위해 무엇까지 해줄 수 있을까?

 

오랜 시간 글을 쓰게 되면서 타케루가 끝없이 했던 고민이었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으나, 아마도 대학 진학을 결심하면서부터는 각오를 다졌던 일인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원동력에는 여러 요인이 있었으나, 그중 하나를 꼽아보라고 한다면 단연 히카리였다. 

 

어릴 때부터 경험했던 부재(不在)에 대한 공포는 한 순간에 그치지 않았다. 그 이후 매 순간 선택을 하게 되면 무엇인가는 반드시 사라지곤 했다. 모든 것이 결국 무(無)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열살이 갓 넘었을 때였다. 지키려고 하는 것은 사라진다고 하지만, 지키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까지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가 막연하게 자리를 잡았던 때도 그 무렵이었다.

 

좋지 않은 것, 그리고 마땅히 사라져야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열두 살의 타케루는 결국 사라지고 남아있는 것에 자신이 그 어떤 것도 기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막연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생겨난 부담은 결국 남아있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그리고 여기에는 사람도 포함이 되었다-였고, 그 고민 끝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실제 소설을 쓰는 작업은 상당히 다른 부분이 있어서, 읽는 사람이 모두 알 수 없는 내용도 있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누군가 한다면, 타케루는 가볍게 읽는 사람의 생각도 쓴 사람이 알 수 없는 일이니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래도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었고, 얼마나 사실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전달을 해야하는가는 끝없는 고민이었다. 

 

 

 

 

사소한 거리감

 

 

 

 

 

타케루는 결국 비겁하게  말로 전하지 못할 것을 구태여 글로까지 전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한때의 자신을 조금이라도 동정하고 싶었으나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자는 마음이었다. 본인에게 직접 말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히카리가 제1의 독자가 될 것도 확실하지 않고, 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가 히카리에게 가장 먼저 닿으리란 보장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문제는, 누군가-혹은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의 상태를 들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히카리에게 직접 전달하고 답을 들을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까지 결론을 내는 데는 얼마나 오래 걸렸는지 모르겠다. 몇 주 동안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고민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제법 어른스러운 것이었고, 타케루는 자신의 이러한 판단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히카리에게 괜한 관심을 끄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에 재학중일 무렵, 타케루는 히카리의 관심을 끌기 위해 별별 방법을 다 만들어냈었다. 대체로는 (어딘가에서 주워들은) 소위 질투 작전이었는데, 결과만 말하자면 실패였다. 그 사이에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서도 히카리에게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었는데 정작 중요한 사람은 정말로 관심이 없었다. 타케루가 이런 말장난과 맞먹는 유치함을 선보이던 초기에도 히카리는 오히려 방관자 역할이었다. 이따금 보이는 관심은 오로지 호기심과 친구로서 궁금함뿐이었다. 이것이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타케루는 이마저도 하지 않게 됐다.

 

그럴 때도 느꼈지만, 그때를 회상하며 글을 쓰는 지금-스무살이 넘어 어느정도 '어른'이라고 자부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때가 되었다-에 이르러서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이라고는 호감이나 동정, 혹은 공감과 같은 수준 높은 감정 교류가 오간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한때 자신과 히카리가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도 했었다. 하지만 그 잔재가 남긴 감정이라고 하기에는 차라리 대단한 거리감이 남아있는 것이 나을 뻔했다. 지극히도 사소한 거리감만 남았다.

 

타케루는 옆에 있는 이면지와 만년필을 들고, 히카리의 이름을 썼다. 정갈한 정자체로 쓰고나니 히카리의 이름과 저의 필체가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거리감도 아니고 이 사소한 거리감이 주는 적당한 찝찝함도 필체 군데군데에 묻어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차라리 스쳐지나간 사람과도 이런 식의 거리감을 갖지는 않았을 것 같은, 대충 그런 정도의 생각만 들었다.

 

그제야 타케루는 왜 글에 히카리의 이야기를 자세히 담을 수 없는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결국 아는 것이 없어서였다. 히카리에 대해서 안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모르고, 함부로 모른다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끝내 타케루는 고민 끝에 히카리의 이름 밑에 다른 동료들의 이름도 함께 써내려갔다. 히카리에게는 그들과 같은 선에 놓여있을 자신의 이름도 가장 아래에 썼다.

 

그렇게 한 문단도 완성하지 못한 글에는 사소한 거리감이라는 제목부터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