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XIV 아이메리크 HL 드림
설정 날조 및 자체 설정 있음
근2년만에 글을 쓰니까 그냥 난리가났네
오늘도 전쟁의 신 할로네께 감히 고합니다
이 지옥같은 순간이 끝나고 구원자를 내려주소서
구원자가 추락하는 그곳까지 함께하겠습니다
「감히」 기도합니다
소문뿐인 신의 가호가 아니게 해주소서
구원자, 조력자
성도 이슈가르드의 중앙의 바닥에는 시계가 묻혀있다는 뜬소문이 돈 지 오래였다. 시계는 아마 낡고 녹슬어서 더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그 시계와 관련된 전설을 믿지는 않는다. 시계가 다시 도는 날 세계가 구원될 것이라는 소문은 신탁의 이름으로 돌아다녔지만 모두 허무맹랑한 소리로 치부할 뿐이었다. 항간에서는 기공방의 술수라고도 했다. 시계를 구하고, 그것을 고칠만한 인물들이 이슈가르드를 모함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 기공방에서 대단한 인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도 구름안개거리에 파다하였는데, 결과만 말하자면 어느정도는 사실인 것 같다. 누구보다도 총기를 비롯한 기공방의 물품을 잘 다루는 이가 성도를 구원해서였다.
그 소문의 장소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열두 기사의 동상이 있고, 문을 열면 정기적으로 신께 고하는 한때의 연례 행사를 구경할 수 있었다. 어느날부터 교황 토르당 7세가 신에게 고하는 것을 멈춘 뒤로는 그마저도 구경을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의 고해가 멈춘 것에 대해서는 여러 소문이 있었으나, 총장 아이메리크의 즉위 이후에 그친 것이라 대체로 아이메리크와 관련한 소문만 무성하였다.) 소위 신성구역으로 칭해졌던 그 공간은 더는 그런 힘도 소망도 담지 못했다. 그저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이 더 많아졌고, 그런 이들 사이에서 아이메리크도 함께 걸을 뿐이었다.
드물게 달이 밝게 뜨고 하늘이 맑은 날이면 모두들 그 달을 구경하느라 주변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오랜 전쟁과 생활고에 시달린 백성들이 의지할 것이라고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보다는 어두운 이슈가르드를 밝히는 달을 더 선호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각이 조금 더 지나고 달이 기울기 시작하면, 그때가 되어서야 아이메리크는 그 상투적인 기도문을 외우며 저를 달래기 위해 성도의 중앙으로 나와 짧게라도 하늘을 보곤 했다.
상투적인 문구 - 전쟁이 연상하는 지옥, 구원자, 추락 - 이라는 말을 읊조리면서도 이것이 신에게 고할만한 내용인가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관성 같은 것이었다. 당위성을 달라는 뜻은 있었으나 그마저도 처음에나 유효했던 것이었을 뿐이다. 이제는 단순한 이유였다. 전쟁의 신, 그에게는 힘을 바라는 것이 옳았고 지금의 성도에서는 그 무엇보다 무력이 필요했다. 무력에 회의적인 부분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으나 교황이 존재하고, 그 존재를 신이 떠받들고 있는 지금에서 아이메리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속된 말로 뒷공작이 전부였다.
어린 시절 스쳤다던 작은 휴런 여자아이는 어느새 긴 청발을 하고 이곳에 들어와 아이메리크의 읊조림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포르탕 가를 등에 업고 그나마 성도에서 자리를 잡은 이 사람은 아직까지는 모험가라고 불렸으나, 곧 영웅으로 불려야 마땅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행보는 아이메리크의 지적 호기심을 상당히 자극하였는데, 지극히 객관적인 어투로 설명하는 그녀 자신의 모험담을 듣고 있자면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지적 호기심이라는 것이 사람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다. 그냥 알아야할 것을 조금 더 알게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합리적인 것만 추구하여 기도문이라고는 전혀 외지 않을 것만 같으면서도, 상투적인 단어 - 전쟁에 어울리는 각종 단어들 - 를 나열한 아이메리크의 기도는 없어지지 않았다. 먼 발치에서나마 그를 바라보고 있는 그의 심복들도 그런 그에게 별다른 말이 없었다. 아이메리크는 달이 기울고 하늘이 밝아질 때까지 밖에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고, 추위를 이기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를 따라나왔다가 결국 그만 두고 나가곤 했다.
이른 새벽, 기어이 모두를 들여보내고 나서 혼자가 되면 그는 늘 신전기사단 앞을 걸어 분수대 아래에 가라앉아있는 은화를 한두개 들어보곤 했다. 은화는 언제나 새것이 반짝거렸다. 처음 신전기사단에 발을 들이던 날에도 분수대를 보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분수가 은화를 정화하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삶의 평온함이 간절한 백성들이 새 은화를 겨우 구해 그곳에 던지며 소원을 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됐다.
◆◆◆
모험가는 어느새 아이메리크의 예상대로 영웅이 되었다. 떨어지는 아이와 그 아이를 구하는 용, 그리고 그 용을 타고 등장한 모험가. 이 세 가지만으로도 성도는 떠들썩했다. 이후 그녀를 향한 멸시와 질책, 시기심은 끝내 그녀의 신분까지 파헤치게 되었다. 괜찮을 줄만 알았던 영웅은 그렇게 한동안 아이메리크의 눈에 띠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이메리크와 그 영웅은 신전기사단의 앞에 있는 분수대에서 다시 만났다.
"아, 여기에 있었군 그래. 안그래도 찾았는데."
말이라는 것은 가볍게 나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다. 찾고 있지는 않았으나, 오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건네면 「아이메리크님이 이런 말을 건넸다」면서 은근히 즐기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을 하였으나, 순간 아차 싶은 감정이 뒤늦게 몰려왔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감정선까지 공유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다. 직접적인 말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그정도는 인간 대 인간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교감이 없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애석하다면 애석했지만, 차라리 이 편이 서로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둘 중 한명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고개를 끄덕이던 영웅은 모자를 벗고 금화 하나를 분수대에 던졌다. 금화로 기도하면 할로네라도 내 이야기도 들어줄까? 그녀의 말은 아이메리크에게 의외의 것으로 다가왔다. 애초에 영웅이 누구를 위해 기도를 한단 말인가? 그리고 할로네가 어째서 이슈가르드 출신인 그녀를, 도망자라는 이유로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할로네를 사랑하는 이들이 목숨걸고 지키는 성도 이슈가르드의 구원자이자 조력자인데 말이다.
별 쓸 데 없는 말을 하는 군. 아마도 에스티니앙이라면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메리크는 에스티니앙의 뻔한 멘트가 적어도 이 순간에 나오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기도하는 것은 오르슈팡을 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그녀는 신전기사단에서도 나에게 오르슈팡 경에 대해 말을 했었지.
대단한 질투심도 시기심도 아니었다. 그와 경쟁할 마음은 전혀 없었으며, 그저 안타까움만 남았을 뿐이었다. 이슈가르드의 구원자를 구원하기 위해 진정한 구원자의 역할을 한 오르슈팡의 무덤은 성도가 잘 보이는 곳에 생겼으나 그곳은 인적이 드물었다.
후회하고 있냐고 물어봐도 되겠나?
그를 위해 금화 한 닢으로 진심을 다하는 영웅의 마음이 그저 궁금해서 물었을 뿐이었다. 무엇을 후회하고 있는지는 물을 생각이 없었다. 아마 후회하고 있다면 저를 대신해서 이곳을 등진 오르슈팡을 지키지 못한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테니 말이다. 모두가 그러는 것처럼.
아이메리크의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답했다. 아니. 후회하고 말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어째서? 아마도 어느정도 두 사람은 신뢰를 기반으로 한 사랑의 어느 한 부분에는 있었을텐데 말이다. 사랑이라는 것이 지엽적이지 않아 누구의 관계든 사랑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이메리크는 그런 자신의 추측이 상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약간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평소에 길게는 생각하지 않는 그녀가 한참 뜸을 들이더니 웃음기도 잘 보이지 않던 얼굴로 어렴풋하게 웃어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아이메리크의 질문을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겸손한 말을 덧붙인 후에 대답했다. 성도의 구원이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던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진정으로 바라던 것만에 진심을 다하는데, 여기까지 온 길에 성도를 구하는 것까지는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재차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었다. 도망치듯 빠져나간 이슈가르드가 무엇이 좋아서 동료까지 희생하며 지키고 싶겠는가. 아이메리크는 자신이 어리석은 질문을 한 것 같다고 사과했다.
저기, 아이메리크. 언젠가 여기에서 엄청난 기도문을 왼 적을 본 적이 있는데,
아이메리크의 사과에 그녀는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본디 멋대로 하는 인물이니까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하는 것 말고는 사실 그녀의 목소리를 이렇게까지 들어본 적도 없었던 것 같아서였다. 사실 그녀는 영웅이라는 이유로 말보다는 행동으로 모든 상황을 통제했어야했으니까 말이다. 그녀는 그 말도 안되는 기도문이라는 것은 상투적인 단어를 나열하여 그럴듯하게 만들어 자신의 안녕을 기원하고 정체 모를 감정을 쏟아내는, 총장으로 마땅히 할 수 있는 말의 연속을 기도문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엮어서 아이메리크에게 묻고 있었다.
소문뿐인 신의 가호를 믿기보다는, 열망하는 것을 믿는 것이 더 내 취향이야.
구원자가 추락하는 곳까지 함께 하겠다는 걸 열망하는 거야?
무슨 말을 하려고 하나 싶었는데, 그저 기도문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늘어놓았다. 성도를 구한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불쾌하기라도 했던 것인지 미안해 다시 물으려고 하다가 말았다. 말을 많이 섞지 않았던 이와 이 정도의 깊이로 말을 하는 것은 경솔한 것 같아서였다. 열망한다는 것이 대체 기도문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던 아이메리크는 짧게 멍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그냥 웃고는 헤어졌다. 그 뒤로도 그녀의 열망이라는 단어는 아이메리크에게 은근히 부담이 되어, 잊고 싶은 말 중 하나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
알 수 없는 질문을 하였던 그녀는 성도를 등지고 나가기 전 아이메리크의 앞에서 짧게 인사를 전했다.
오늘도 풍요의 신 노피카께 감히 고합니다
이 지옥같던 곳에서 구원자는 자리를 떠납니다
추락까지 함께 하겠다는 자를 구원하고 떠납니다
「감히」 기도합니다
소문뿐인 신의 가호가 아니게 해주소서
이곳의, 그의 안녕을 열망합니다
그는 자신의 기도가 어쩌면 그녀의 열망과 같은 선상에 있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고 뒤늦게나마 짚어볼 수 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기도문을, 그것도 대척점에 있는 신에게 빌면서 떠나는 영웅의 뒷모습을 누구보다도 오래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