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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단편적인 사실과 인상을 바탕으로 한 날조 서술이 지배적입니다.
푸른 앵무새
며칠 동안 추적추적 가벼우면서도 끈질기게만 내리던 비는 몇 시간 전부터 갑자기 모두가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묵직하면서도 속 시원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다이루크는 이따금 그 강도가 달라 다소 산만한 소음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던 그 비를 표현할만한 말을 고민하고 있었다. 장대 같은 비라는 표현을 몰라 창밖을 보며 고민하던 끝에 비가 이상하게 내린다고 말했던 그 날, 어린 다이루크는 이 감탄을 자아낼 비를 보고 장대 같다는 말을 배웠다.
그는 아직 배울 것이 많은 소년일 뿐이었다. 총명한 편이었으나 정교하거나 집요한 구석은 아직 없었다. 누군가 정돈하여 묶어준 머리카락도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하였으나 자세히 보면 군데군데가 잔머리로 다소 산만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언뜻 보면 웬만한 조건이라는 조건은 다 갖추어 완벽하였으나 완전하다고 표현하기에는 이처럼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다이루크를 아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꺼렸다. 아마도 감히, 라는 말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다이루크가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작은 새장에 갇혀 있는 귀하고 화려한 새끼 공작새 같다고 하였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평가가 섣부르다고도 하였다. 하지만 어느새 정체 모를 누군가의 평가는 다이루크를 수식하는 은어처럼 대해졌다. 그렇게 ‘새끼 공작’은 다이루크를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점이 되었다. 다이루크는 여러 의미에서 새끼 공작으로 불렸다.
새끼 공작은 지겹게 내리던 빗속에서 화려함보다는 정교하고 집요한 새끼 앵무새 한 마리를 만났다. 아직 표현이 부족했던 어린 다이루크가 케이아를 본 그 순간 생각한 것이었다.
“저 사람은 누구야?”
아직 품위라고 할 것도 없는 다이루크는 무심결에 창밖의 케이아를 보고 물었다. 다이루크의 표정은 어린아이가 가질법한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아무래도 경계나 짜증에 가까웠다. 본인을 가다듬지도 못하고 있는 공간에 누군가 들어오는 것이 마냥 좋기만 하지는 않은 것이 당연하였다. 하지만 섣부른 경계를 보이기에는 겁이 났다. 장대처럼 내리는 빗속에서 버림받아 홀로 서 있음에도 당당한 그에게는, 화려한 꼬리처럼 사치스러우면서도 쓸모없는 무기는 필요 없어 보여서이기도 했다.
다이루크는 푸른 앵무새를 본 적도, 그것에 대해 들은 적도 없었다. 하지만 알고 있는 단어 몇 개를 조합해서 푸른 앵무새라는 말을 만들 수는 있었다. 화려하고, 우울하며, 동족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다른 케이아에게 제법 어울리는 수식어라고 생각하며 홀로 만족해하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버리고 간 아이, 자신의 형제가 된 아이, 그리고 도무지 진심이라고는 없는 것 같은 아이. 이따금 할 말이 없으면 자신의 사소한 행동들을 말 그대로 관찰하며 오히려 한술 더 뜨는 케이아에게는 ‘케이아 라겐펜더’라는 걸거친 단어보다는 차라리 푸른 앵무새가 더 제격이라고,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다이루크는 생각하고 있다.
* * *
다이루크가 오로지 케이아에게만 붙인,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것으로 존재조차 불명확했던 푸른 앵무새는 다이루크의 눈 앞에서 잘 자라고 있다. 항간에서는 새끼 공작―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긍정적인 의미만 있지는 않았을 것 같은 말―보다는 푸른 앵무새가 라겐펜더에 더 잘 어울릴 수도 있겠다는 말도 돌았다고 한다. 다이루크는 그 모든 것에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저의 영향이 미쳤을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다이루크가 처음 보았을 때 케이아를 보고 느낀 왜소함과 약간의 침울함, 그 사이에서도 보이는 정체 모를 품위는 모두 그날의 날씨 때문이었다. 케이아는 어리지도, 왜소하지도 않았으며 침울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그런 감정을 느낄 만큼 케이아가 정교하고 예민하지는 않다는 것을 제법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지만 말이다.) 케이아는 품위라는 것은 가리고 살려고 작정한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다이루크는 처음 케이아를 창문 너머에서 마주하였던 사람이라면 그것이 케이아의 ‘진짜’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케이아의 가려지지 않는 이질적인 품위는 비에 씻겨 내려갈 수도, 우울하고 어두운 하늘에 가려질 수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케이아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십 년 전 그날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같이 한 시간과 그렇지 않은 시간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무지 생각을 그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더 케이아를 따라 떠들기나 하는, 감정이라고는 내비치지 않는 앵무새 정도에 가두고 싶어하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제 앞에서 잔에 담긴 얼음으로 내는 소음을 이상한 음악이라고 칭하며 연주라는 것을 하고있는 케이아에게 무엇인가 더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끔 생각의 타래를 끊지 못한 채로 케이아를 바라보면, 그는 시도때도 없이 다이루크와 눈을 맞추며 마치 무엇인가 큰일을 함께 도모하는 것처럼 굴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처럼 말이다.
“뭘 그렇게 보고 그래. 이제 무엇이든 함께 할 생각이 드는 모양이군, 정도면 이 상황에서 적당한 말이 되려나?”
“쓸데 없는 소리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 케이아.”
다이루크는 자신이 그 ‘무엇이든’에는 정말로 어떤 것이 들어가느냐고 물어보면 대답도 하지 않을 것이면서도 이렇게 능청스럽게 구는 케이아가 거슬린다. 다이루크는 케이아의 화술―다이루크는 이것도 내심 사람을 홀리는 수많은 능력이자 기술, 그리고 사소하고 쓸데없는 편법 중 하나일 것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고는 있지만―은 그저 앵무새가 내뱉는 수많은 말 중 하나일 뿐이라는 가능성을 가장 높은 곳에 세워두고 오로지 능률과 효율로 모든 것을 재단하며 말을 자르며 매일 스스로를 지키고 있다고 자부하기에 더더욱.
그래서 지금의 다이루크에게 케이아는 날이 갈수록 가벼워지고, 어디에서 마음에도 들지 않는 이상한 선물이나 구해오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누구보다 변칙을 사랑하는 원칙주의자처럼 구는 이상한 사람이다. 일상의 대부분에서 변칙주의자처럼 굴면서도 원칙에 진심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응당 가져야하는 원칙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구는 구석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원칙과 변칙의 경계가 모호한 것이 제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정말 어딘가에서 그 두 상스러우면서도 고결한 단어들을 떼와 장식해두는 것처럼 군다. 다이루크는 ‘정의’라는 호화스럽고 무용한 단어를 이해하기 위해 쏟아부었던 시간 만큼이나 애써 케이아를 이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십 년 전의 그날로 돌아간다고 하면 오히려 케이아를 손쉽게 제 것으로 만들어 아래에 둘 수 있을 것이라는 다소 오만하고 어린 생각에 가볍게 물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낯선 존재를 이다지 어렵게 대해야한다는 사실도 미처 깨닫지 못했을테니 말이다. 같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여태 왜 그렇게 굴었는지, 도대체 매번 하는 그 가벼운 언사와 장난이라고 할 수도 없는 장난들은 언제 그만두고 체통과 품위라는 것을 도로 찾을 것인지. 몇 번이나 목에 차오르는, 그리고 그 수많은 말들을 압축한 “무엇이 진심이냐”는 말은 사실 해서는 안 되는 말도 아니었으나 어쩐지 돌아올 파장이 걱정되어 쉽게 꺼낼 수 없는 말이기도 하다.
다이루크는 자신이 케이아에게 부리는, 평범한 상대 이상으로는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 사실 공작에게 어울리는 새장을 선물 받기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수많은 책임감이 버거워 부린 투정이라고만 믿고 있다. 새끼 공작새가 아니기에 화려할 수도 있는 자신이 꼬리를 접고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그리고 자신이 만든 것에 불과한 푸른 앵무새에게 홀릴 것만 같은 심정도 모두 투정에 불과하며, 너무나도 많은 생각과 감정을 쳐내며 살아서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어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