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때때로 우리에게 너무 많은 기회를 주었다. 그 기회를 잡아서 사용하고 말고의 문제는 전적으로 ‘나’와 ‘그’의 문제였다. ‘나’와 ‘그’를 ‘우리’라고 묶기에는 어색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나’를 원하는 ‘그’가 ‘나’에게 있다면 언젠가 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세나나루, 그의 곁에서
나는 아홉 살에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어린 나이의 나를 위협적으로 에워싸고 있는, 큰 건물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옆에 서있는 나의 ‘오빠’의 손을 잡고 서 있을 수 없어 꼼지락거리고만 있는 나에게 다가왔다.
“세나 이즈미.”
그러고는 자기소개랍시고 이름만 말했다.
“어쩌라는 눈으로 보면 나야말로 어쩌라고인데?”
아직 입 한 번 떼지 않았는데 속사포처럼 말을 건네는 통에,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겨우 입을 열어서 내 이름이 “나루카미 아라시”라는 것을 말했다.
“나루카미 아라시?”
그의 입에서 나오는 나의 이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름 자체가 좋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뒤에 딱 붙여 말했다.
“속에서는 태풍이 막 치고?”
내 이름으로 유치한 장난을 치는 그에 화가 났다. 어린 나이의 나는 세게 쥔 주먹으로 그를 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나의 가족이라는 사람들과 함께 그의 가족들을 찾아가 공손하게 “세나 선배, 죄송합니다.”라고 공손하게 인사를 해야만 했다. 거듭 인사를 하고 고개를 숙였다. 허리를 깊게 숙일수록 공손한 사과라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나는 그때, 사과는 상대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어색할 것도 없었던 그와 나의 사이는 어색해졌고 우리는 이따금 만나면 어색하게 인사하는 것이 전부였다. 사실 나는 그를 보면 불쾌한 감정이 우선이었지만, 이상하게 그는 나를 불편해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이 더 기분이 나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고, 적당히 더 나이가 들었다. 내가 열세 살이 되고 우리는 다시 만났다.
“하하, 전에 그랬단 말이지? 나루카미군이 그렇게 말수도 적고?”
촬영장에 들어가니 내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나는 제법 이 세계에 적응을 했고, 잘 자란 축에 속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어느 것인지, 그리고 그 정도가 어느 선인지 까지도 잘 알았다. 나는 소위 말하는 ‘잘 팔리는’ 모델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의 지금과 완전히 반대되는, 완전 갓난 아이 같던 시절의 작은 실수 — 라고 하기에도 사실 이제는 기억도 잘 안나는 — 를 세나 이즈미가 언급하고 있었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소비하고 있었다.
“오네, 나루카미군!”
감독님이 부르는 소리에 나는 몇 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며 반갑게 들어갔다. 반가운 얼굴 사이로 다시 보이는 곱슬머리의 익숙한 인상.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가 보였다.
내가 열세 살이 되던 그 촬영장에서 그와의 뜻하지 않은 재회를 한 후에, 우리는 이후의 시간도 같이 보냈다.
나는 그때서야 내가 그에게서 느꼈던 막연한 불편함의 감정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촬영이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간, 허무하고 먼지와 땀 냄새만이 엉켜 케케묵은 불쾌한 냄새만 가득한 곳에서 구두를 신고 발을 구르기만 했다.
꽤 오랜 시간 그랬다.
“세나 선배?”
아홉 살의 그 날 이후로 불러본 적은 없어 입 밖으로 나오는데 이상하게 목이 메었지만, 그렇다고 어색하지는 않았다. 내뱉는데 불쾌하면서도 편한 것이 또 부르고 싶었다.
“세나 선배.”
그의 발을 구르는 박자에 맞추어 장난스럽게 세나 선배, 세나 선배, 하고 불러보았다. 그러다 무안해 괜히 화장대에 있는 사탕을 하나 깠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너무 컸다.
“이즈미쨩.”
바스락거리는 사탕 포장지 소리에 용기를 내어 불러본 그 한마디에 나는 더 확신할 수 있었다. 아직은 나보다 약간 더 큰 그가 나의 앞으로 한 달음에 다가왔다. 그러고는 허리를 숙여 가까이 다가왔다. 한숨이면 닿을 거리였다.
“뭐라고?”
“가, 가까워.”
습관적으로 사탕을 입에 넣고 굴리는 탓에 뭐라 더 대꾸하기도 불편해서 그냥 보고만 있었다.
“또?”
뭐라고 말하기만을 바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답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은 그를 보고 있는 것 말고는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말 할 거, 없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가까워지는 그를 밀어내지 못해 결국 그를 안아주었다. 어쩌면, 그날 이후로도 나도 보고 싶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