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하지만 아라시가 숲에 들어갔다 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는 모두가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 잠이 드는 시간에는 똑같이 잠들었다. 학교생활이 지루했으며, 미래에 대한 기대감 하나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 되었다.
새 학기에는 잘 적응하고 있었다. 깜박거리는 정도가 심해지고 잦아지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생활하는 데 있어서 문제가 될 정도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그가 하는 실수는 타이를 하지 않고 등교를 한다거나 시험 일정을 잊고 가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오는 정도였다.
십여 년 동안 일정한 패턴을 유지했던 나루카미 아라시의 생활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었지만, 또래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볼 만한 가벼운 실수였다. 같은 생활이 너무 지루해서 그렇다고 이해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의 상태가 그렇게 지속될 무렵, 기억의 간섭도 점차 없어져갔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라시의 기억의 간섭의 정도가 다시 심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때가 되어야만 보통의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 정도였다. 그는 이전 생의 자신들과 완전하게 분리가 되면 어딘가 부족한 사람처럼 굴었다.
아라시가 자신의 상태를 은연중에 알았을 때에는, 이미 간섭 주기가 불규칙적이었다. 비가 내리거나 숲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이즈미가 생각이 나다가도, 해가 떠서 날씨가 화창해지면 또 곧장 간섭도, 생활 지수라고 할 만한 것들도 모두 현저히 낮아졌다.
“왜 이럴까?”
아라시는 자신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면, 꼭 숲으로 들어가 나무 꼭대기를 향해 고개를 젖히고는 물었다.
“응? 이즈미쨩!”
제법 큰 소리로 불러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화창한 날이면 기억이 간섭이 없어져서 순조로운 생활도 불가능했던 탓에, 애써 간섭으로 일어났던 희미한 ― 꿈을 꾼 것 같은 정도로 희미하게 남은 기억이었다. ― 기억을 붙잡고 가서는 물어보았다.
화창한 날이면, 그는 햇빛을 피해 늘 숲으로 들어갔다.
* * *
비도 오지 않는 화창한 날이 며칠씩 이어졌다. 아라시는 긴 병가를 내고 숲으로 들어갔다. 기억이 드문드문 끊기는 탓에 쉽게 밖에 나갈 수 없어서였다. 이즈미가 사라지고 나서 이제는 그칠 것만 같았던 간섭으로 아라시의 생활은 거의 비정상의 수준에 다달았다. 그는 숲에 들어가, 꼭 세 번째 생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연못의 앞에 주저앉았다.
“이런 숲에도 연못이 있다니, 정말 이상하지? 사람들은 여기까지 들어와 보지 않은 걸까? 물이 맑아, 이즈미쨩은 없는데.”
그러고는 손을 물속에 넣어 휘휘 저었다. 그럴 때마다 물비린내가 심하다 할 정도로 올라왔다. 비가 오는 날이면, 그 내음새가 싫어서 고개를 젓고 몸서리를 쳤었다. 지금이라고 그것이 좋지는 않았다. 거북하고 진저리가 나는 것은 여전했다. 다만, 그럼에도 계속 손을 넣어 물을 휘젓고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숲 속에서 쪼그려 앉아 몇 시간을 그렇게 연못에 손을 담그고 있는데, 화창했던 날씨와 달리 비가 내렸다. 마른하늘에서 한두 방울씩 내리기 시작하던 비는 제법 세차졌다.
아라시의 의미 없고 지루한 행동이 몇날 며칠 더 지속되었다. 나무 위에서 큰 바람과 함께 쿵하는 소리가 나며 숲에는 발자국만 남았다. 흐린 날이었다.
“못 봐주겠네~.”
나른하게 하품을 하며 내려온 이는, 이날도 역시 쪼그려 앉아 물비린내를 뒤집어쓰려고 작정한 아라시의 얼굴에 저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침 삼키는 소리가 나고, 긴장했다는 것이 노골적으로 전해졌다. 아라시는 그때 침을 삼키지 말 걸, 하고 속으로 몇 번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만나고 싶나봐?”
“누가?”
“그쪽이 소환수를.”
“…….”
아라시는 그가 자신에게 지난 기억을 주었던 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고개를 끄덕이지도, 확실하게 저으며 사양하지도 못한 채로 몇 초가 흘렀다. 제법 긴 시간 같았지만, 내리는 비에 완전히 젖지 않은 숲을 보니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상생력의 부족.”
“상생력?”
상대는 흐트러진 검은 옷가지를 바로 잡고는 허리를 곧게 폈다. 그러고는 아라시에게 별 말도 하지 않고 뒤를 돌아 걷기 시작했다. 곧 뒤를 돌아 제 갈 길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이 치고는, 제법 미련이 있어 보이는 발걸음이었다.
“상생력의 부족이라고. 잘난 소환자 어쩌고 하더니~. 별 수 없잖아?”
상생력. 아라시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대충 무슨 말인지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추도 어느 정도 가능한 부분이었다. 소환자와 소환수의 상생력 부족이라면, 이즈미가 사라진 이후 부쩍 이상해진 자신의 상태도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아라시는 그것을 확실히 하고 싶었다.
“설명해줄 수 있니?”
“설명 해주면 달라지는 게 있나~? 설명이야 해줄 수 있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어.”
“제물로라도 쓰겠다는 말이니?”
아라시는 요 며칠 동안 일어난 간섭 중에서, 숲의 재생을 위해 제물이 되어야했던 자신이 겹쳐 보이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물었다.
“내 소관은 아니라. 그걸 주재하는 이는 따로 있는데~, 만나 볼래?”
그의 말은 가벼웠다. 싫으면 말고, 라는 말이 당장 뒤에 붙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소환수가 없는 소환자를 다루는 것은 이토록 쉬웠다.
“전에 나한테 선물이라며 기억을 알려줬던…… 맞지?”
아무리 봐도 사람은 아니었기에, 아라시는 ‘사람’이나 ‘것’이라는 말은 생략하고 물었다.
“맞아.”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네가 처음 죽었을 때부터 셋쨩의 곁에 있었거든, 낫쨩?”
“나를……잘 아는 모양이구나?”
아라시는 그에게서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가 아니라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이도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우선, 이즈미쨩을 되찾고 싶어.”
“그건 하는 거에 따라 다르다고 할 걸~?”
“어떻게 하면 되니? 우선, 이 기억부터 원래대로 되돌리고 싶어.”
“간섭이 없는 순간은, 소환자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야. 최대한이기도 하지만. 그걸 포기하겠다는 건 멍청해. 셋쨩도 바라지 않을 텐데~.”
그의 말은 여전히 가벼웠다. 하지만 그는 분명 아라시의 생각과 행동의 끝에 이즈미와의 만남을 그려놓았다.
“시작하면 그만 두는 건 없어. 그래도?”
꼭 다른 이가 말하는 것 같았다. 완전히 달라진 태도와 표정, 말투까지 모두 말이다. 아라시는 그의 태도의 변화에 시작하면 정말로 끝이 없음을 직감했다.
“그래도 좋아.”
“좋아. 사실 우리 쪽의 사정도 좋지 않거든. 숲을 유지하던 중심이 사라졌으니까. 셋쨩이 돌아오고, 그쪽이 없어지더라도 우리는 셋쨩이 필요한 게 진실이라면 진실. 공백이 생각보다 커졌거든. 우리 쪽의 상황을 굳이 알려주고 싶진 않은데, 우리들의 ‘왕님’이 꼭 소개하라고 해서 하는 거야. 어쨌든, 귀찮게 전해야하는 말은 끝났고 내 용건 전할게.”
“도와주겠다는 거지?”
“도와줄게.”
그는 자신을 다시 한 번 소개하며, 자신의 이름을 사쿠마 리츠라고 소개했다. 이즈미와 관련된 이들도 차차 소개시켜주겠다고 했다. 시간이 없으니 급하다며, 리츠는 제 말에 곧장 답하지 않는 아라시를 매섭게 노려보기도 했다.
“장난 아니야.”
“알아.”
리츠는 아라시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거 잡으면, 셋쨩이 싫어할 텐데? 마음 편하게 살다가 적당히 죽는 방법도 있어. 인간이니까. 내려진 특권 같은 거고.”
“돌려놓기 위해서라면 뭐든 괜찮으니까. 잡으면 되는 걸까?”
리츠는 “응”하고 답하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말은 듣지도 않는 아라시가 제법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아라시가 손을 뻗자, 어디선가에서는 그에게 손을 잡지 말라는 소리를 치는 것 같았다. 그것은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아라시는 그 소리를 애써 눌렀다. 두려움에서 거세게 몰아쳐 오는 것일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했다.
그는 짧은 고민 끝에 앉은 자리에서 리츠의 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기억이 드문드문 끊기고, 그 자리를 간섭된 기억이 채워갔지만 그런 불규칙적이고 비정상적인 기억 상태에 아라시는 잘 적응해 나가겠노라고 다짐했다.
아라시를 뒤집어쓰듯 감싸고돌던 물비린내가 옅어지고, 리츠와 아라시 사이에는 서로 다른 이유를 두고 같은 목표를 향한 약속이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