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piegel im Spiegel」 은 타 커플링으로 구성된 시리즈입니다.
* 첫작은 세나나루로, 다소 실험적인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모브인 '나'가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 사고와 관련된 것 등의 다소 자극적 소재가 있습니다.
Spiegel im Spiegel
세나 이즈미 X 나루카미 아라시
“저희 거울 가게, 「Spiegel im Spiegel」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로 몇 번째 손님을 맞는지 모르겠군요. 지난번에 소개해주신 덕에 이렇게 무난하게 가게 운영을 해나가고 있답니다. 예? 아! 시간을 확인해야겠다, 고요? 이런, 그러실 필요는 없답니다. 어차피 여기에 있으면 그런 건 다 상관이 없거든요. 보자 오늘은……, 이런. 궁금한 사람이 있어서 왔다고요? 뭐, 봅시다. 이루어질지는, 거울만이 답해주겠지요.”
‘나’를 포함해 몇 명은 이 거울 가게가 신기해서 들어온 것이었다. 패키지여행을 하면서 관광 명소라고 해서 온 것뿐이었다. 별 것 없는, 거울의 방이라고 하기에 충분한 곳에 들어왔는데 주인장으로 되어 보이는 젊은 남자는 상당히 자신만만했다.
우리—같은 목적으로 온 사람들—는 그 거울의 방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구경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누군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은 자신을 소개하기보다는, 상대의 사진을 내밀었다.
사진은 탁한 금발의, 적당히 앳된 남자. 예뻐 보이는 사람이었다. 주인장은 그 사람으로부터 사진을 받아들고 소리를 내어 웃었다. 웃다가 진이 빠지는 사람이 마냥 정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주인장과 자신을 꼭 숨긴 사람 사이에서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른 채로 있다가 주인장을 따라서, 가게의 명물이라는 거울 속으로 들어갔다. 긴 레일을 따라 들어가니 주변은 어두워지고, 홀로그램이라고 하기는 너무나도 사실적인 사람이 앞에서 왔다 갔다 했다.
쉿! 주인장의 소리에 주변의 소리는 더 커지고, 우리는 의뢰나 다름없는 것을 한, 사진을 건넨 그 남자를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의 시선은 그를 향했다.
그는 무언가 중요한 것을 보려는 것처럼 꽤나 집중하고 있었다. 곧이어 현실 같은 그 홀로그램 속의 사람이 “이즈미쨩!”하고 부르는 소가 들렸다. 영상에 집중하고 있던 사람은 움찔하더니, 모자만 더 눌러썼다.
Spiegel im Spiegel
“이즈미쨩! 여기 봐, 엄청 예쁜 거울이 있네.”
“쓸 데 없는 거 줍지 마. 나루군, 아까 길고양이도 덥석 잡지 않았어? 손은 씻은 거?”
“어머, 이즈미쨩. 박하게 굴지 마렴? 아까 그 고양이 귀엽다고 더 빤히 보던 사람은 이즈미쨩인걸?”
“됐으니까, 빨리 일어나. 갈 길이 멀다고. 이래서는 정말로 뒤처지겠어. 뒤처지는 거 완전 싫거든?”
세나 이즈미는 나루카미 아라시가 쪼그려 앉아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그저 아라시가 그 거울을 줍는지 아닌지 확인만 하려고 했다.
“안 주웠어, 됐니?”
아라시는 이즈미에게 확인시키려고 두 팔을 들어서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손이 빨라 이즈미가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라시의 뒷주머니에는 손거울이 반쯤 걸쳐져있었다.
이후로 아라시는 그 거울에 관심이 없었다. 그냥 예쁜 것을 주운 것에 만족했다. 가끔이라도 거울을 꺼내보는 일은 없었다. 상자에 넣고 다시 옷장의 아래, 구석 어딘가에 넣어놓고 생각날 때마다 열어보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흘러, 아라시가 사고로 크게 다쳐 누웠을 때가 되어서야 거울은 다시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는 꽤 오랜 시간동안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 꼭 거짓말 인 것처럼 빠르게 회복했다. 아직 편하게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대부분의 일상생활은 가능한 정도까지 회복했다. 그런 아라시를 보면 다들 거짓말 같다고만 했다. 나루카미 아라시는 정말 움직이지만 못할 뿐이었다.
이즈미는 아라시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집에 있는 여러 옷가지며 화장품, 그리고 아라시가 애지중지하는 꽃 장식이 된 거울을 챙기러 아라시의 집으로 왔다. 자주 오지 않는 곳에 와서, 꼼꼼히 뒤졌다. 대충 챙겼는데 도저히 보이지 않는 꽃 장식이 있는 거울 때문에 시간이 꽤나 흘러버렸다.
그런 그를 재촉하듯 전화가 왔다. 이즈미는 “찾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나루군, 이렇게 참을성이 없었어?”하고 오히려 심통을 부렸다.
“그게 아니라 이즈미쨩, 옷장 구석에 보면 가방 있어. 거기에. 알려주려고 했는데도 왜 신경질이니?”아라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아~ 알겠으니까, 일단 끊어야 찾을 거 아니야. 찾고 나서 다시 전화할게. 혼자 걸어 다니다가 또 넘어져서 다치지 말고. 나루군이 지금 다쳐서 우리 모두, 연습 못하고 있는 거 알아?”
이즈미는 최근 활동을 하지 못한 것에 아라시까지. 이런저런 이유로 Knights가 뜸해지고 있는 것을 지적했다.
“나 때문만은 아니잖니? 이즈미쨩도 사고 쳤잖아, 그 사고의 여파도 보통이 아니라구. 어쨌든 부탁할게? 다들 이즈미쨩 언제 오냐고 하는 걸~. 그럼!”
먼저 전화해놓고는 얄밉게도 끊네, 라고 말하며 이즈미는 아라시의 옷방으로 갔다. 삼면이 옷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옷장 문을 열면 나루카미 아라시의 것이라고 이름을 붙여놓은 것처럼 예쁘게 장식이 잘 되어있는 전신 거울이 붙어있었다.
이즈미는 그 거울이 부담스러워 무시하다가, 세 번째쯤 되었을 때부터 거울을 유심히 살폈다. 불투명해서 저를 분명하게 비춰야할 거울은 어쩐지 반투명 상태였다.
“뭐야, 이런 거울로 뭘 하겠다는 거?”
* * *
‘우리’가 세나 이즈미라고 불러야 할 것 같은 그 사람과, 그가 가져온 사진 속의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일단 거기까지였다. 주인장의 말에 의하면, 세나 이즈미라는 사람이 “나루군”이라고 부르는 사람과의 기억을 모두 보기에는 사진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거울 속으로 들어와 사진이 있어야만 볼 수 있는 남의 기억을 훔쳐보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물론 특별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제법 유명한 그룹이었던 Knights의 이름부터 해서, 그들의 기나긴 공백까지. 사실 우리에게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더 많은 기억을 볼 필요는 없었다. 신기한 경험으로 마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세나 이즈미는 그러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진을 한 뭉텅이 더 내어주었다.
“여기 있으니까 빨리 돌려.”
주인장은 ‘우리’를 보았다. 그 표정은 꽤나 난처해보였다. 작가인 내가 판단하기에 일단 이 이야기는 좋은 소재가 될 것 같았고, 빠른 판단을 내려 보자면 ‘우리’중 그 누구도 누구의 기억을 보는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대표로 말했다. 우리는 괜찮습니다, 하고.
세나 이즈미가 내민 사진은 유닛 사진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인물들로만 가득 찬 사진이었다. 저 단체복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Knights의 유닛 복이 아닌가 싶다. 뒤에는 Knights의 이름이 크게 적힌 전광판이 있었고, 뭔가를 축하하는 자리라고 하기에 딱 맞았다.
주인장이 우리의 앞에 사진을 흔들어 보이고, 거울에 갖다 대니 거울이 사진을 먹은 것 마냥 사진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진짜 같은 가짜들이 우리의 눈앞에 나타났다.
* * *
“차암, 이딴 걸 찍어서 뭐하니?”
나루카미 아라시는 신경질적으로 답했다.
“춥고, 짜증나. 바람이 아직 차단 말이야. 이런 거 찍지 않아도 1등 아니니? 그렇지 않니, 리츠쨩?”
아라시는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리츠쨩”하고 부르며 팔꿈치로 그를 툭툭 쳤다. 사진 속의 네 명은 모두 무대에 올라있었고, 세나 이즈미는 나루카미 아라시의 발을 보이지 않게 툭툭 차며 작게 말했다.
“나루군, 좀 조용히 하지? 망할 안경을 벗었더니 생각이고 예의고 죄다 벗어던졌나보지?”이즈미의 말은 직설적이었다.
“이즈미쨩, 나루코쨩이라고 하지 않으면 듣지 않을 거라구.”
“하? 나루코쨩 좋아하네, 나루군. 조용히 하고 저쪽이나 봐. 저 녀석 집중 시간 딱 십 오초 남았으니까. 쿠마군도.”
이즈미는 두 사람에게 부탁을 하며 앞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허름한 무대의 아래 어딘가에서, “레오군!”하는 소리에 반응하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뭐라도 되는 양, 손을 흔들었다.
다들 괜찮은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기념 촬영은 이렇게 어수선한 내부 사정 때문에 개판으로 나왔다. 이즈미는 그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앞으로 반성의 기회를 좀 가져. 사진사는 누구야?”하고 찢어버릴 듯이 노려보았다.
“못살아, 그러면 이렇게 붙여놓고 반성의 기회로 삼으면 되잖니? 정말, 야만적이네. 이즈미쨩. 예전보다 더하잖니.”
나루카미 아라시는 뭔가 대단한 말이라도 했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 모습이 영락없이, Knights의 아까의 오만한 무대와 딱 어울렸다.
* * *
사진 하나에 이야기 하나인 것 같다고 멋대로 결론을 내고 나니, 이즈미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단순히 인간으로서의 호기심이라고 정했지만, 사실 이보다 더 좋은 소재가 없지 않을까? ‘나’는 세나 이즈미의 옆으로 한 발 가까이 걸어갔다.
어라? 주인장은 ‘나’를 보고 웃는 것 같다. 그러더니 사진을 모조리 거울에 갖다 대었다. 아까보다 눈이 부시고, 가짜는 진짜가 되어 다시 우리 앞으로 다시 걸어왔다. ‘나’의 코앞에서 ‘나’를 뚫어져라 보는 나루카미 아라시 때문에 나는 숨을 죽였다.
“바보 아니야? 나루군은 여기에 올 수 없으니까 긴장 풀어도 된다고.”
어느새 ‘나’의 옆으로 한 발 다가온 세나 이즈미는 그렇게 말했다. 나루카미 아라시가 없다고? 어느새 ‘나’는 그, 그리고 그들의 이름에 친근해졌는지 서운함까지 느껴졌다.
* * *
“가기만 하고, 오지 않으면 안 돼. 알겠니, 이즈미쨩?”
길고양이의 코앞에서 그를 혼내는 것처럼 구는 아라시의 말끝에 나온 이름은, 세나 이즈미였다. 눈물은 한 방울도 고이지 않았는데도 눈물을 훔치는 아라시는 꽤나 감성적인 것 같았다.
“나루군. 여기서 뭐해?”
이즈미가 쪼그려 앉아 고양이와 말하는 데 정신이 팔린 아라시의 뒤로 와서는, 아라시의 어깨를 손끝으로 가볍게 쳤다. 그러고는 “또 이거랑 같이 얘기라도 한다는 거야? 참내. 고양이가 뭘 알아듣겠어, 아니. 애초에 나루군이 고양이 말을 못하잖아?”하고 몰아 붙였다.
“이즈미쨩, 우리는 서로 감정으로 교감하는 거야. 하기야, 세나 선배라는 사람은 그걸 알 리가 없지. 그렇지?”
이즈미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세나 선배”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모양새가 얄미웠다. 이즈미는 아라시의 얄미운 표정에는 면역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라시의 이마를 눌러 그를 뒤로 주저앉히고는 그 앞에 저도 쪼그려 앉았다.
“나루코쨩, 하고 불러주면 그 얄미운 버릇도 좀 버릴래? 어?”
* * *
‘나’는 이즈미와 아라시의 이야기가 사진 순서대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도무지 이즈미와 아라시의 관계가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이즈미에게서 두 사람이 언젠가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는 것을 짐작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 * *
“나루코쨩, 하고 불러주면 그 얄미운 버릇도 좀 버릴래? 어?”
이즈미의 갑작스러운 “나루코쨩”발언에, 아라시는 혼자 얼굴이 벌게졌다. 감성적이고 예민한 편이라고 하더라도 워낙 포커페이스로 유명했던 아라시였기 때문에, 그런 아라시를 보고 있는 이즈미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이즈미는 벌떡 일어났다. 손을 내밀까 한참 고민하는데, 아라시는 주저하지 않고 땅을 짚고 일어났다.
“하여튼. 기회는 안줘.”이즈미의 말이 홀로그램과 현실, 두 층으로 쌓여 제법 또렷하게 울렸다.
나루카미 아라시는 세나 이즈미를 따라갔다. 뾰루퉁한 표정이 이전에 빠졌던 연습을 하러 가거나, 유닛 단위의 행사에 강제로 끌려가는 것 같았다.
조용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또 들어갔다. 곧 도착할 것을 알았는지 아라시는 빠른 걸음으로 이즈미를 앞질러갔다. 아직은 축하의 열기가 남아있지만 텅 빈 건물의 계단을 오르고 오르니 앞에는 Knights의 멤버들이 있었다.
스오우 츠카사까지 더해진 다섯 명의 Knights. 그들은 이전에 무대에서 대단한 트로피를 안고 찍었던 사진보다 더 좋아보였다. 아라시는 내키지 않지만 이즈미와 레오의 졸업을 축하한다고 하며 레오에게만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나는?”
이즈미의 유치한 말에, 아라시는 물론 옆에 있던 다른 멤버들 역시 답하지 않았다.
“없냐니까?”
서운한 마음에 괜히 더 발끈했는데, 그 앞에 아라시가 걸어오더니 두 손으로 저의 얼굴을 바치고는 웃으며 말했다.
“안타깝네, 이즈미쨩의 꽃은 여기. Knights에 남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웃고 있는 그 얼굴이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갑자기 바뀐 장면은 아라시의 복귀를 축하하는 무대였다. 아라시는 애석하게도 앉아있었고,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마이크에 대고 “너희들을 살려낼 수 있는 것에 영광이었어. 희생이 아름답다는 건 경험해봐야만 알 수 있다고 하는 거, 무슨 말인지도 배웠단다? 그 시간을 거쳐서 고마운 사람이 생겨버렸어.”라고 말했다.
* * *
‘나’는 물론, ‘우리’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요약해보자면, 나루카미 아라시와 세나 이즈미가 친하지 않을 때 우연이든 필연이든 Knights가 한 번 쯤은 대외적으로 괜찮은 이미지일 때가 있었고, 두 사람은 제법 친해졌고, 아라시는 이즈미의 졸업을 축하했고 …… 아라시는 모종의 이유로 사고를 당했고, 그는 Knights에 복귀했다, 정도?
그것이 맞는지 세나 이즈미에게 확인을 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세나 이즈미가 보고 있는 화면을 보았다. 그제야 이해가 됐다. 나루카미 아라시와 관련한 사고 기사까지 모두 사진으로 찍어 가져온 세나 이즈미. 그는 무슨 생각이기에 저런 것까지 찍어 왔지?
화면에는 커다란 헤드라인이 박혀 꽉 채우고 있었다.
나루카미 아라시, 입구로 향하는 차로 뛰어들어 ……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지만 혼수상태.
* * *
“그 거울 때문이야. 버리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니까? 나루군. 지난번에 보니까 주워왔더라? 남이 쓰던 거 줍지 말라고 했잖아.”
세나 이즈미는 백스테이지에서 휠체어에 앉아 땀을 닦고 있는 나루카미 아라시의 앞에 서서 말했다. 나루카미 아라시는 전혀 모른다는 표정으로 그를 보았지만, 그게 세나 이즈미에게 통할 리 없었다.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지? 다 알고 있으니까.”
이즈미는 아라시의 앞에 손거울을 올려두었다. 아라시가 주워놓고, 이즈미의 앞에서 가져가지 않겠다고 했던 거울이었다.
“불길하니까 버리자. 어? 그거 주운 이후로 되는 게 없잖아.”
“기분 탓이야 이즈미쨩, 이렇게 좋은 날에 그렇게 날을 세울 필요가 있니?”
아라시는 이즈미의 말은 언제나 그랬듯이 가볍게 무시했다.
“모두에게 물어봐. 나는 그냥 내가 원하는 선택을 했을 뿐이고, 그건 그냥 내가 이렇게 살 운명이라 그랬던 거란다. 이즈미쨩이 나 대신 많이 걸어주고 있잖니?”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이즈미는 소파에 앉아 아라시와 시선을 맞추었다. 이즈미가 앉기를 기다렸는지, 아라시는 열기로 눅눅해진 옷을 털어내는 데 사용했던 수건은 휠체어의 팔걸이에 대충 걸어놓고 말했다.
“이즈미쨩, 화풀이를 하는 건 좋지 않아. 아직 어리구나?”
* * *
그 말로 ‘나’가 볼 수 있는 세나 이즈미와 나루카미 아라시의 이야기는 끝났다. 시계를 보지 않았지만, 느낌적으로 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지치지도 않았는지 세나 이즈미는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서 보았다. 누군가 저 사람 모델이었다더라, 하는 말을 했다. 그제야 그의 비현실적인 꼿꼿함이 이해가 되었다.
“마지막. 잘 봐두라고.”
‘나’의 잡생각을 없애려는 건지, 세나 이즈미가 말을 걸었다. 그는 주인장에게 마지막 사진을 주었다.
* * *
“그동안 고마웠어.”
나루카미 아라시는 두 발로 멀쩡하게 서있었다. 그는 “다시 일어난 우리의 여왕!”하는 츠카나가 레오의 들뜬 목소리에 웃으며 꽃다발을 받고 있었다. 나루카미 아라시는 기적적으로 재활에 성공했다고 했다. 제법 오래 서서는 꽤 무거운 꽃다발을 안아도 주저앉지 않았다.
“그 기념으로 발표해도 될까?”
“뭔데? 우리의 여왕을 위해서라면 모든 부탁을 다 들어주겠다고! 세나가~ 말했지, 안 그래? 세나?”
이즈미에게로 쏠리는 시선들은 꼭 이즈미에게 책임을 미루는 것 같았다. 그것과 다르지 않았는지, 이즈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나에게, 왕님에게, 이즈미쨩에게, 리츠쨩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소중하게 해준 츠카사쨩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야.”
아라시의 발표는 나름대로 중대발표인 모양이었다. 그는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우리의 소중한 Knights, 여기에서 끝내도 될까? 모두 다 함께. 혼자 그만 두는 건 싫어, 소중한 걸 내팽개칠 정도로 매정한 여자는 아니니까. 나 말이지?”
그렇게 말하는 아라시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환해보였다. 아라시에게서 Knights를 없앤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두가 알고 있었음에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나머지 멤버들의 반응이 믿기지 않았는지 “응?”하고 되묻던 아라시는 한명한명을 콕 집어 물었다.
“그렇게 해 줄 거지?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거랑은 너무 다르네. 내가 기대한 미래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하지만 아라시는 그 어느 때와는 다르게 눈물을 훔치지 않았다.
* * *
세나 이즈미는 주인장에게서 사진을 받았다. 나중에 이곳을 나오면서 주인장에게 듣자 하니, 나루카미 아라시의 부탁대로 Knights는 정말로 소리 소문 없이 없어졌다고 하더라. ‘나’는 순서가 정리되지 않은 세나 이즈미에 대해서도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나루카미 아라시의 사진을 찾을 때마다 들고 와서 이렇게 확인하고 간다는 것이었다.
“아직 뭘 확인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꽤 중요한 걸 잃어버린 거겠죠.”
그랬을 것이다. ‘나’의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 하에서도 분명 그랬으니까 말이다.
“좋은 구경 했으면 이제 가지? 그렇게 얼굴 본다고 더 나올만한 이야기 거리도 없고.”
그렇게 말하며 사라진 그는 몇 달 뒤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 거울 가게로 들어가는 사진과 함께 실린 헤드라인이 그의 근황을 전하고 있었다.“미쳐버린 세나 이즈미, 거울만 보면 광기를 보여 병원으로 조속히 이동.”이라는 기사만 남겼다.
세나 이즈미의 뒤죽박죽인 기억이 안쓰러워, 나는 정리되지 않았음에도 그의 기억을 보았던 것으로, 거울 가게로 유명한 이곳 「Spiegel im Spiegel」의 서문을 작성한다. 꼭 잃었을 지, 혹은 잊었을 지 모를 기억을 찾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