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두 시 오 분 전. 바늘이 정확히 그 시간을 가리켰다. 나루카미 아라시는 눈을 감았다. 오늘도 꿈을 꾸게 될까? 그는 설레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을 모두 안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발끝까지 힘을 주고 숨 참는 것을 몇 초간 이어갔다. 열두시를 알리는 알람이 어울리지 않게 한 밤 중에 울렸다. 나루카미 아라시는 그 소리에 온 몸의 긴장을 풀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과는 상관없이, 그는 쉽게 잠든 것처럼 보였다. 금세 잠이 들어 새근새근 숨을 내쉬는 모양새가 금방이라도 잠을 자지 않으면 죽을 사람 같아 보였다.
하지만 잠은 오래 가지 못할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전에 바랐던 꿈이라도 꾼 것인지 몸을 뒤척였다. 그러다 일어나기가 여러 번이었다. 그는 협탁에서 환하게 방을 밝히고 있는 전자시계 대신, 어둠 속에서 째깍째깍 시간 가는 소리만 내고 있는 아날로그 시계를 애써서 읽으려고 했다. 표정이 일그러지고 한참 지나서야 시간을 제대로 읽을 수 있었다. 시계는 2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쩔 수 없네.”
애써 잠든 것이 물거품이 되었음에도, 그는 덤덤했다. 짜증내는 것에 통달했다는 느낌보다는 포기했다는 쪽이 더 맞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천장을 보고 멀뚱히 누워 있다가 시계를 코앞에 가져갔다. 째깍째각 소리를 잘도 내며 가고 있는 것을 살살 흔들어보기도 했다.
“있지, 내 말 듣고 있니?”
그러더니 기어이 시계에 말까지 걸었다. (당연하게도) 시계는 답도 없이 계속 같은 소리만 냈다. 같은 속도에 같은 크기의 소리를 내며 한참 가던 시계의 건전지를 빼고 나서야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웃었다.
— 뭐야? 왜 그렇게 웃어, 이렇게 어두운 시간엔 좀 자지?
어둠 속에서 시계 소리가 아닌,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시계 소리가 멈추면 들리는 목소리에 나루카미 아라시는 소리를 내어 웃었다. 한 밤 중과 다름없는 시간이라 목이 잠겨 끊기고 썩 좋은 소리는 아니었지만, 분명 들리는 그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소리가 나는 곳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침대 머리맡에 난 창문 쪽으로 신경을 집중했다. 발끝까지 힘을 줘 (나름대로는 겨우) 잠이 든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바람 소리와 함께 찬 기운이 창문 너머로 분명하게 느껴졌다. 아라시는 그 바람에 놀라 몸을 움츠렸다. 날씨가 풀리고,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고 했음에도 두껍게 세 겹이나 덮은 이불도 소용이 없을 정도의 한기였다.
그 한기가 분명 온전한 사람에게서 느껴질 리는 없었다. 그래서 아라시는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돌리며 그의 행방을 찾아보고자 했다. 하지만 한기는 금세 자리를 옮겼고, 찬 기운은 정체모를 그의 움직임을 고스란히 따라가는 것 같았다. 아라시는 몸을 돌려 왼쪽으로 누우며 허공에 대고 말했다.
“이쪽으로 오라는 건 아니야. 그냥 이렇게 누우면 좋다길래 눕는 거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구?”
그러고는 또 다시 몸을 오른쪽으로 뉘였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왼쪽 보단 역시 오른쪽이 편하달까. 진짜란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목이 제법 풀렸는지, 그와 딱 어울릴 만한 정도의 목소리가 낮게 방 안을 채웠다.
— 딱히 안 궁금했는데. 이제 잘 생각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아라시는 지금 자려고 한다는 답을 우물거리며 겨우 남겼다. 그러더니 꽤 깊게 잠이 들었다. 그러자 한기만 느껴지던 이의 몸체가 반투명하게 윤곽을 드러냈다.
“강해져.”
선명하게 들리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나루카미 아라시는 눈을 뜨지 못한 채 그렇게 계속 잠만 잘 뿐이었다.
그렇게 꿈을 꾼 지가 몇 달 째였다. 나루카미 아라시는 두시쯤 되면 일어나서 정체 모를 그와 드물게 있는 대화를 즐겼다. 평소에도 분명한 것만 선호하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그와의 대화가 꺼림직 하거나 거북하지는 않았다. 이따금 길을 걸으며 친구에게 말을 하다가도 아라시의 새벽을 함께 하는 ‘그’가 궁금하다며 되물어오는 일이 있으면, 아라시는 꼭 자신이 프시케라도 된 양 굴었다.
“알려고 하면 할수록 재앙뿐이라구, 모르니? 나는 그렇게 비극을 겪고 싶지는 않단다? 비극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아. 그렇지 않니?”라고 말하며 상대를 기어이 설득하려고 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지난 생의 자신이 있다면 정말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전생이라는 —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 단어를 입에 올리고, 그것을 분명 본인이 인정하면서도 그 말은 이따금 했다. 꼭 누가 시킨 것처럼 말이다.
“나루쨩, 니 요즘 말이다….”
그런 그의 상태를 걱정하는 이도 몇은 있었지만, 아라시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애초에 다른 사람의 말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는 그라서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나루카미 아라시를 포함해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그랬던 나루카미 아라시는 학기가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학교생활을 하면서는 꿈마저도 쉽게 꾸지 못했다. 일상생활이라고 할 만한 여러 행동들은 그에게 버거웠다. 그는 봄을 타는 고양이마냥 굴었다. 옆에서 작은 입이 찢어지게 하품하고 있는 고양이의 옆에서 아라시도 하품했다. 두 번을 했음에도 도저히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아, 아라시는 고양이를 한 번 쓰다듬으며 신세나 한탄했다.
“있지, 요즘은 꿈도 안 꾸고. 심심해서 하품도 이렇게 나오는 거 있지?”
고양이는 답이라도 하고 싶은지 하품을 그치고 아라시를 빤히 쳐다보다가 나무 위로 올라갔다. 아라시는 고양이가 올라간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교실에서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지가 무성한 나무로 올라간 고양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의 시간과 공간은 지켜주겠노라 마음을 먹고 자리를 뜨려는데, 나뭇잎이 후두둑 떨어졌다.
잎이 무성할 시기는 아니지만, 나뭇잎이 이렇게 사정없이 떨어지기도 이상한 때였다. 아라시는 두 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허리를 넘겨 나무 꼭대기로 시선을 향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어쩐지 오늘은 꼭 일찍 자고 싶어, 라고 아라시는 그렇게 나무에 가볍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그러다 그는 겨우 기다렸던 꿈을 꾸었다. 그러다 눈을 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말을 걸었지만, 애석하게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아라시는 그렇게 대답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라시는 아침을 알리는 알람 소리에 눈을 뜰 뿐이었다. 그저 너무나도 바라던 것을 꿈으로 꾼 것뿐이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세차게 바람이 부는 날 아라시는 바람이 불지 않는 나무가 저 혼자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그 뒤로 하교길에서도 저의 발걸음을 따라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애써 무시하려고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점점 무시해지기 힘들 정도로 저를 좇는 흔적이 무서워진 아라시는 애써 괜찮은 척 말했다.
“어머, 요즘 왜 이럴까 몰라.”
아라시는 한 바퀴를 빙 돌았다. 그러다 언젠가 교내에서 본 적이 있는 고양이를 붙잡고 오늘 정말 이상한 날이네, 하고 답하는 게 전부였다. 그런 그의 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그는 자신을 세나 이즈미라고 소개했다.
* * *
그런 그는 이제 사라져서 더는 없지만, 흔적을 어렴풋하게나마 가지고 있는 나루카미 아라시는 이번에는 정말 이유 없이, 바람에만 흔들리는 나무를 보며 말했다.
“이런 저런 게 모두 이상한 이였지만, 괜찮아.”
그러고는 세나 이즈미가 늘 지키고 있던 나무를 끌어안았다.
“돌아오면, 꼭 이렇게 안아줄게. 이즈미쨩?”
나루카미 아라시는 선명하게 남아서 지워지지 않는 세나 이즈미의 흔적을 하나씩 되짚어가며, 그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제 기억 속에서 분명하게 되살려내고 있었다. 쉬지 않고 돌아가면서도 끝내 다시 똑같은 시간만 가리키는 시계에 질린 그는, 여전히 반응 없는 나무를 안고 같은 말만 하는 자신에게도 지친 것처럼 보였다. 아라시는 오랜 시간 눈을 감고 숨을 골랐다.
“꼭 다시 만나자?”
이즈미에게 꼭 다시 찾아내겠노라 약속이라도 하듯 다짐하며 팔을 풀었다. 바람조차 답이 없는 고요한 숲 한가운데에서, 까슬까슬한 나무껍질이 아라시의 팔에 미미한 상처를 남겼지만 그것이 신경을 거스르지는 않았다. 지루하게 또 다시 똑같은 시간에 찾아와 같은 말을 하더라도, 작은 상처가 다른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서였다.
아라시는 실상채기가 난 곳을 문지르며 그렇게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