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츠카사] 조언
짧게 다듬은 머리가 아직 어울리지는 않는 이가 세 번의 노크 끝에 문을 열었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방에는 주인이 없을 것이고, 그런 곳에 무턱대고 들어가는 것은 분명 예의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꽤나 이 순간이 간절한 것만 같아 보였다.
문고리를 잡고 쥐었다 폈다 하기를 몇 번. 사람이 자주 드나들지 않는 곳인지 문이 열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안은 휑했다. 환기와는 거리가 먼 장소인지, 먼지 냄새가 묵직하게 코를 누르는 것만 같았다. 콜록콜록하는 소리가 겨우 잦아들고 나서야 짧게 다듬은 머리가 어울리지 않는 이는 겨우 안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안에는 세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새로온 이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보였다. 한 명은 시큰둥했고, 또 다른 한 명은 그마저도 하지 않을 정도로 무관심했다. 남은 한 명은 문쪽을 돌아보며 환하게 웃더니, 오히려 새로온 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내렴?”하고 인사를 하고 나가는 것이었다.
그는 당황했지만, 문 앞에서 몇 번이고 입밖으로 내지 않았고 연습했던 말을 또박또박 말했다.
“안녕하세요, 스오우 츠카사입니다. 이곳, 『Knights』의 선배님들을 찾아왔습니다. 계신가요?”
그의 움직임을 굳이 보고 있지 않아도 귀를 기울이고는 있었는지,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들 저 나름대로 웃었다. 일제히 웃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스오우 츠카사는 이때의 분위기를 생각해보면 ‘일제히’와 같은 하나의 느낌은 여전히 받을 수 없었다.
* * *
— 그러니까 츠카사쨩, 그때 꽤 귀엽지 않았니?
전화 너머에서는 나루카미 아라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잠깐 통화하며 시간이나 때우려고 했는데, 옛날 이야기가 나오다보니 절로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쿠마 리츠는 벽에 볼록하게 나온 건물의 기둥에 등을 대고 그늘에 몸을 겨우 걸치고 있었다. 그러다 바람이 불고 구름이 걷혔다.
그늘이 완전 걷히자 기분이 나쁜 리츠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화 너머에서는 그를 걱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리츠쨩, 무슨 일 있니? 그 소리에 리츠는 고개를 저었다.
멀리서 보면 꽤나 다정한 모습이었다. 건물 벽에 기대어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옛이야기를 하며 웃고 있는 리츠의 얼굴은 제법 밝았다. 어리광이며 투정, 무관심은 제법 개선되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표정이었다. 그런 그를 멀리서 보면서 오던 츠카사는 리츠를 부르려고 했지만, 금방 저지당하고 말았다.
놀라게라도 해주면 덜 억울했을 텐데, 그것은 언제나 실패하는 츠카사는 고개를 숙이고 은근히 눈을 치켜 떠 리츠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리츠는 그런 츠카사의 모습 정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었다. 무시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제법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게, 귀여웠는데 많이 커버렸지♪”
주어 없는 말을 건네자, 츠카사는 리츠가 들고 있는 전화에 귀를 딱 갖다 대었다. 말투에서 아라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전화의 등허리쯤 될 곳에 귀를 갖다대어본다고 소리가 잘 들리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츠카사는 꽤나 악착같았다. 저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한 것을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인상을 잔뜩 쓰고는 듣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그가 귀여웠는지, 전화의 주인은 전화를 받다가 “미안~”이라는 말을 제법 장난스럽게 하고는 스피커폰을 켰다.
“낫쨩 미안. 스—쨩이 말이야……?”
전화 너머에서는, “어머, 둘이 같이 있는 거니? 그럴 거면 나도 부르지 그랬어. 서운해!”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있기를 몇 초, 시끄럽다며 연습에나 임하라는 잔소리도 전화 너머에서 들려왔다. 전화 너머에서는 그 소리가 들리는 것도 미안했는지, 아라시가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 했다.
“괜찮습니……으윽, 막지 말아주세요!”
아라시에게 뭐라고 한 마디라도 하고 싶었는지 소리를 치는 것은 실패했다. 인사도 하지 못할 정도의 사이는 아니지 않냐며 조근조근 따지는 츠카사에게 리츠는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많이 컸네, 스쨩. 츠카사는 많이 컸다는 말에 어린 아이가 아니라고 반항이라도 해볼까 하다가 말았다. 그래도 오늘은 많이 컸다는 이야기정도는 들은 것으로 괜찮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 * *
“안녕하세요, 스오우 츠카사입니다. 이곳, 『Knights』의 선배님들을 찾아왔습니다. 계신가요?”
그 소리에 답을 해줄 이는 아라시 같았지만, 의외로 그는 답을 하지 않았다. 힘내라는 말에 정말로 힘을 낼 줄은 몰랐다며 그냥 돌아가라는 아라시의 말은 제법 단호했다. 하지만 어느 한 명이라도 쉽게 놓칠 수 없던 이즈미는 새로 온 이를 그렇게 대하는 아라시가 못마땅한 눈치였다. 그들의 사이에서 그것을 보는 것마저도 귀찮았던 리츠가 걸어서 나왔다.
“나는 이만♪ 그 『Knights』의 선배는 이만 가니까 잘 돌아가라는 말이야.”
자신이 그 『Knights』의 일원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준 리츠는 정작 『Knights』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그렇게 츠카사의 옆을 지나갔다.
* * *
“아까 나루카미 선배와 무슨 이야기를 하셨나요? Small talk라고 하기에는 너무 happy해보이셨습니다.”
“그야 어른들의 대화에 아이는 끼는 게 아니니까 안 알려줄래.”
“다들 나루카미 선배의 말만 인용하시네요, 꼭 proverb처럼요.”
“명언 제조기지.”
리츠는 은근히 시선을 아래로 깔고 츠카사의 반응을 살폈다. 아라시와 이야기했던, 츠카사와의 첫 만남 때처럼 그는 머리를 짧게 다듬고 나왔다. 리츠는 걸음 속도를 늦춰 츠카사의 조금 뒤로 가서는 그의 짧은 머리 사이로 손을 넣어보았다.
“뭐 하시는 건가요? 아직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헤에? 스—쨩,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지. 머리가 엉켜서 풀어주려고 했을 뿐인데……♪”
그럴 리가 없다며 제법 단호한 츠카사의 반응에 리츠는 작정하고 놀리려고 그랬는지 제법 진지하게 답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말씨를 모를 리 없는 츠카사는 리츠의 손을 잡아 얌전히 내려놓았다.
손을 잡고 내려놓는 그 손이 제법 떨렸다. 쌀쌀한 날씨에도 건조하지 않은 손바닥은 츠카사가 그 짧은 사이에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 * *
츠카사가 아주 당황한 적은 몇 번 없었다. 그는 처음 『Knights』의 실체에 대해서 알게 되었을 때에도 놀라지 않았다. 뭐든 괜찮다는 쪽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쇼크를 받거나 하는 쪽도 아니었다. (이후에 멤버들은 그 때의 츠카사 반응을 보면, 의외로 무덤덤한 구석도 있어서 여기에 잘 적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들 하곤 했다.)
그런 그가 당황한 것은 내부에서의 은근한 기류 때문이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던 형태의 호감에 대해 알게 되었을 무렵, 츠카사는 놀라 리츠에게 물었다. 당시에 그는 사쿠마 리츠가 좋은 상담 상대나 조언자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당사자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문제였으니까 말이다.
리츠는 츠카사에게 그런 것을 구구절절 설명하다가 마지막으로 갖다 붙였다. “나에겐 마~군이 그렇달까나. 스―쨩이야, 죽어도 이해는 못하겠지. 어리니까.” 그 말에 츠카사는 발끈해서는, 자신도 그런 것 쯤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귀여운 투정이라고 생각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 * *
“있지, 이즈미쨩? 츠카사쨩, 요즘 이상하지 않니? 오늘도 리츠쨩을 만나러 갔다던데.”
“만나서 연습은 안 오고 뭐 하는 거야. 저 녀석을 나 혼자 감당하긴 무리라고? 얼른 오라고 그러지?”
이즈미는 제 앞에서 고상하게 찻잔만 들었다 내려놓는 아라시와 어딘가에 드러누워서 허공에 펜을 놀리는 레오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 한숨을 쉬고 연락을 하려고 하는데, 우당탕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그곳은 질렸다는 듯이 돌아보지도 않으며, 말로만 “왕님!”하고 레오를 부르는 이즈미였다.
“차암, 이즈미쨩도. 타이밍은 못 맞추는 나쁜 오빠네.”
아라시의 말이 대충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었기에, 이즈미는 손에서 놓지 않고 있던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복잡한 일에는 끼기 싫다면서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서는 몸을 풀기 시작했다.
「건투를 빌게, 힘내렴!」
* * *
「건투를 빌게, 힘내렴!」 아라시로부터 짧은 메일이 왔다. 굳이 메일로 보내는 저의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쉽게 들키지 말라는 의미 같았다. 『Knights』에 들어와서도 이해하는 데 가장 오래 걸렸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제법 든든한 조력자가 된 아라시의 메일에 츠카사는 들키지 않을 정도로만 웃었다.
“아, 큰일났다.”
리츠는 츠카사가 그 잠깐의 시간도 즐기지 못하게 구는 것만 같았다. 츠카사는 꼭 손바닥에 올려다놓고 저를 놀리는 것 같은 사람에게 건투를 빌어주는 아라시의 응원어린 마음이 얼마나 소용이 있을지는 모를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큰일인가요?”
큰일이라면 같이 해결하면 된다고 생각한 츠카사는 리츠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분명하게 선을 그은 리츠는, “스—쨩은 해결하지 못할 일.”이라고 정리해주었다. 무슨 일이냐고 더 캐물어야했지만, 사랑은 타이밍! 하고 몇 번이고 외쳤던 아라시의 말에 그 말은 삼켰다. 그 말을 할 순간이 아니라는 판단 하에서였다.
그렇게 츠카사는 리츠의 옆을 따라다니기만 했다. 리츠는 무언가 한다고 했고, 츠카사는 돕겠다고 무작정 나왔지만 정작 하는 것은 없었다. 해가 저물어가고, 날이 제법 추워지면서 손가락이며 발가락 끝이 차가워졌지만 그것도 참으며 걸었다.
물어보지 않네. 리츠는 츠카사보다 조금 더 앞으로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진중한 것 같지만, 의외로 성격이 급한 츠카사였다. 그런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리츠의 곁에서 같은 길을 네다섯 바퀴나 도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었다. 리츠는 그 이유를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낫쨩이 조언했나보네?”
“예? 아니요, 나루카미 선배는 대화의 순간까지는 조언해주지 않으셨습니다.”
“낫쨩, 쓸 데 없는 일을 해버렸네.”
애초에 츠카사의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리츠는 자신이 확신하는 것을 던지고는 다시 이전의 페이스대로 걸었다. 잠깐 느려졌던 걸음이 금세 빨라지자, 츠카사는 추위를 이기지 못한 종종 걸음으로 겨우 리츠를 따라 잡았다.
그런 츠카사가 따라오지 못하게 더 속도를 내어 걷던 리츠는 츠카사가 제법 제 등에 가까워졌을 무렵 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돌발 행동은 생각하는 것도 귀찮아했던 리츠였기에, 츠카사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리츠 선배!”하고 큰 소리를 내어버렸다.
제법 조용한 거리. 이목이 쏠릴 무렵, 리츠는 뒤를 돌아 츠카사의 머리에 손을 올려 살짝 눌렀다.
“정중하게 사과 해야지. 스~쨩은 못된 것만 배웠구나……♪ 사과해봐.”
“예?”
“좋아한다고 사과하면 놔줄테니까. 오늘 밤은 얌전히……♪”
츠카사는 리츠의 표정을 볼 수 없어, 제 머리를 누르고 있는 그 손의 무게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