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2019/2018

[세나나루] Live Game 확장편

POSTED ON 2018. 1. 7. 19:53

* 재록본 <나에게만 들리는 야상곡> 에 수록될, Live Game 확장편 입니다.






Live Game

 

 


 

그래서 진짜 하겠다고?”

어때서?”

 

마주앉은 자리에는 팜플렛이 하나 놓여있다. 나루카미 아라시를 대신해 그것을 뒤지고 있는 세나 이즈미는 못마땅한 표정이다. 이즈미쨩, . 아라시는 불만이 가득한 이즈미의 얼굴을 보고 그의 미간을 눌러주며 말했다.

 

그래서 누가 도와준대?”

어머? 이즈미쨩이 도와주려던 거 아니었어?”

 

아라시는 고갯짓으로 이즈미의 손 언저리를 가리켰다. 손에 들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했다.

 

내가?”

 

단순한 호기심이라던가, 궁금증, 그리고 굳이 더 더해보자면 아라시의 심중을 이해할 수 없었기에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싶어 구경이나 하려던 것이었다. 겨우 그런 이유로 팜플렛을 보고 있는데 도와달라고 은근히 우기기까지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즈미는 미쳤어? 하고 절로 나는 소리를 겨우 참아 삼켰다. 온 몸 끝에서부터 끌어올리는 한숨을 의도적으로 쉬고는 재차 물었다.

 

내가 언제 도와준다고 했는데?”

이즈미쨩이 안도와주면 누가 도와줘……?”

카사군이나. 나루군 부탁이라면 곧잘 듣잖아?”

어머, 츠카사쨩한테 이런 걸?”

 

아라시는 이즈미가 펼친 팜플렛의 페이지를 뚫어져라 보았다. 수많은 리스트 중에서 예시로 들어있는 샘플인 키스 미션을 보고 아라시가 잘 눌러 펴주었던 미간은 다시 패였다. 이 장면을 츠카사가 찍는다고 생각하니 썩 유쾌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쾌할 것 같기는 했다.

 

그래도 이걸 나한테 찍으라고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이즈미쨩, 나 좋아해?”

 

하아? 이즈미는 펼쳐져있던 팜플렛을 손수 덮어주는 아라시에게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처음 생각했던 대로 도우라는 무언의 압박이 맞다. 코앞에 온 아라시의 얼굴과 아까의 수많은 미션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을 때, 이즈미는 아라시를 밀어 도로 앉혔다.

 

그런 것도 아니면서. 찍어주라. ?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니?”

……그러던가.”

 

결국 세나 이즈미는 나루카미 아라시의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쯤은. 이즈미는 짧은 순간, 상상으로 강하게 겹쳐오던 아라시의 얼굴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것에 은근히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대신 다 끝내고 나면, 이즈미쨩 데리고 여행 가줄테니까~.”

이렇게 기분 나쁜 돈으로 무슨 여행을 간다고?”

싫니? 나랑 이렇게 하는 것도, 그래?”

 

아라시는 언제 뺏어들었는지 팸플릿을 보고 있었다. 제법 귀여운 수준의 것부터 강도 높은 것까지. 찬찬히 보며 묻는 아라시의 말에 선뜻 답을 할 수는 없었다.

 

, 일단 끝내고나 얘기해. 그러면 이건 일단 비밀로?”

 

으음, 하고 한참 뜸을 들이던 아라시는 될 대로 두지 뭐?”하고 시원스럽지 못하게 반응했다. 이즈미는 대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아라시를 보았다.

 

속셈을 알 수가 없네.”

 

비단 아라시의 속셈만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부탁이라고 하지만 여러 부탁을 수없이 잘 거절해온 자신의 속셈도 궁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일단 가장 눈에 띠는 것도 모르겠으니 그것만 궁금해 하기로 했다. 어쨌든 세나 이즈미는 나루카미 아라시의 서포터로 그의 게임을 돕기로 했다.

 

* * *

 

Live Game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인적사항을 적어주세요. …… 얼굴 인식을 시작합니다. 인식에 성공하였습니다. 다음의 사항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첫째, 방송으로 출력됨을 동의합니다. 둘째, 게임을 시작하고 되돌아갈 경우에는 출력된 방송을 삭제하실 수 없습니다. 셋째, 이익금은 세전으로 …….

 

뭐가 이렇게 많아?”

 

이즈미는 아라시와 나란히 앉아 아라시가 Live Game이라는 이름을 가진 앱을 다운받는 것을 잠자코 보고 있었다. 이런 게임을 돕는다는 것이 어쩐지 마음 한 구석에서는 켕겼다. 그래도 이왕 돕기로 한 것은 돕기로 했으니까. 이즈미는 그런 이유를 내세워 합리화 하면서도, 아직까지 제 옆에 이렇게 딱 붙어있는 아라시가 언제 마음이 바뀌어 다른 사람과 키스를 하고 그것이 방송에 나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불편했다.

 

그렇게 아라시에게 가볍게 던졌던 말 뭐 이렇게 주의 사항이 많냐고 투덜댔던 것 은 저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아라시는 이즈미의 말에 느긋하다 못해 약간은 느리고, 또 제법 진지한 조로 답을 했다.

 

그야 사기꾼도 많고…… 봐야하니까, 조금만 기다려봐…….”

쓸 데 없는 데서 진지하다니까. 그렇게 연습이나 좀 나와 보지?”

차암, 이즈미쨩. 연습은 이즈미쨩이 몇 번만 도와주면 해결되는 거잖니? 그렇게 자꾸 말 할 거면 오늘은 돌아가. 마마 부르면 되고……. 못살아! 뭐라고 말하는 지 듣질 못했잖니, 글자가 너무 많아서 이러면 곤란하다구.”

 

결국 그 조항들을 읽어보겠다고 안경까지 꺼내들었다. 그러고는 저의 온갖 권리를 양도한다는 매매 계약서와 다름없는 것에 사기를 당하지 않겠다고 집중까지 했다. 나루카미 아라시는 게임의 이런저런 사항을 동의하느라 정신이 빠져서는 이즈미의 질문에 곧이곧대로 답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무신경한 것이, 어릴 적 나루카미 아라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세나 이즈미는 그렇게 정신을 놓고 여러 절차를 밟으며 게임에 동의하고 있는 것을 보다 못해 아까전의 팜플렛의 뒤표지를 보았다.

 

Live Game. 라이브 게임이라는 이 게임은 카메라로 촬영하여 조건을 달성할 때마다 돈을 드립니다. 상환은 100만엔 이상부터. 끝까지 도전해보세요?”

 

게임의 설명을 다시 읽어도 어이가 없다. 그 와중에 상환은 100만엔 이상부터라는 구절을 읽을 때 아라시가 웃는 모습을 보니 더 황당했다. 기가 차네, 기가 차. 아라시의 얼굴을 똑바로 보고 말하다 이즈미는 결국 물어보았다.

 

나루군, 돈이라도 필요한 거? 얼마 전에도 미국 다녀왔잖아. 번 돈 도둑이라도 맞고 왔어? 그것도 아니면 사기 당하기라도 했나? 왜 돈을 이렇게 벌려고 하는 거…….

차암. 내가 아무리 예쁜 게 좋아도 사치스러운 것도 아니구~. 그렇게 멍청하지도 않다구? 잘 안다는 사람이 그러네?”

그러면 이런 걸 왜 하는 거야 도대체?”

이즈미쨩.”

 

눈을 동그랗게 뜨고도 힘을 주니 눈매가 제법 매섭다. 아라시는 그런 표정으로 이즈미를 보았다.

 

~ 알겠으니까. 돕기로 했으니까 끝.”

가끔 이즈미쨩은 잔소리가 너무 많다니까?”

 

투정을 부려야할 사람은 되려 이즈미 쪽이었지만, 표정만 보자면 아라시가 백번은 더 억울한 상황같이 보였다. 이즈미는 나오는 한숨을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 하자. 까짓 거! 이즈미는 그렇게 말도 안되는 게임에 서포터로 참가하겠다는 각서까지 써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게 수십 수백 번을 마음을 다잡아도 도저히 마음먹은대로 되지 않을 것 같다. 이즈미가 그렇게 이유도 모르고 속을 끓이고 있는 동안 아라시는 Live Game에서 필요한 여러 절차를 마쳤다.

 

띠링, 하는 음이 울리고 START 창이 떴다. 아라시는 이즈미에게 핸드폰을 쥐어주었다.

 

이즈미쨩, 누르고 나 찍으면 돼! 알았지?”

~ 그래그래.”

 

건성으로 대답한 것 같았지만, 그 순간에도 몇 번의 갈등을 겪었는 지 모르겠다. 이즈미는 결국 버튼을 눌렀고, 첫 번째 스테이지의 미션이 떴다.

 

 

Live Game Stage 1st 

 

띠링, 하고 경쾌한 울리며 열린 게임의 첫 화면은 이즈미에게 신선했다. 화면 안에 있는 아라시가 자신을 보고 무엇인가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도 큰 만족감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시작 화면이 떴음에도 아무 말도 없이 화면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이즈미를 보던 아라시는 이즈미를 불렀다.

 

이즈미쨩. 거기에 뭐라고 적혀있어?”

이즈미쨩~”

이즈미쨩!”

 

세 번을 부르고 나서야 이즈미는 아라시의 말에 반응했다. 뭐라고? 요즘 들어서 넋을 놓는 일이 많아졌네. 체력문제니? 걱정하는 아라시의 말에 머쓱해진 이즈미는 괜히 화면을 두드렸다.

 

.”

?”

바로 승낙해버렸어. 어쩌지?”

얼마짜리니?”

……하아? 지금 그게 중요해? 뭐인지가 더 중요할 거 같은데?”

어머? 이걸 왜 하는데~?”

 

아라시의 말도 맞는 말이긴 했다. 어쨌든 아라시는 표면적으로는 백만 엔이라는 큰돈을 목표로 삼고 있었고, 이즈미는 그것을 돕기로 했으니까. 그러니까 목적만 보자면 아라시의 말 대로 첫 미션의 금액이 중요하기는 했다. 이즈미는 화면을 구석구석 보다가 ‘30000이라고 적힌 것을 보았다. 0의 숫자를 세고 또 세어보았다.

 

삼만 엔?”

어머!”

 

아라시는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이즈미는 그런 아라시를 흘겨 보고는 삼십초 남았대.”라고 답했다.

 

뭐를 해야 하는데?”

뭐야, 별 것도 아닌데 삼만 엔이나 줘? 윙크.”

에에. 시시하네~.”

 

이즈미는 아라시의 말에 어깨나 으쓱이고 말았다. 아라시에게 윙크는 너무나도 진부한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얼른 해, 시간 얼마 안남았다고? 이십, 십구, 십팔, 십칠…….”

급하니까 예쁘게 안 나오잖니. 재촉보단 격려! 차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그래서 고래라도 하겠다는 거야? 나루군, 시간 내로 달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예쁜 거 필요 없거든? 나한테 잘 보이기라도 하려고?”

어머? 이즈미쨩, 꿈도 너무 크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잖아?”

그래그래. 알겠으니까 얼른 해.”

 

이즈미는 아라시와 별 소득도 없는 사소한 말다툼을 끝으로 아라시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니까 잘 나오게만 찍으면 알아서 인식한다는 거지?”

 

어느새 게임에 먼저 적응한 이즈미는 혼잣말을 하면서 집중해 아라시의 얼굴이 또렷하게 보이도록 화면을 조정했다. 아라시의 모습을 최대한 예쁘게 잡아주고 싶어서였다.

 

아이돌이니까 예쁘게 잡아주는 거야.”

 

이즈미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이왕이면.”이라고 굳이 덧붙였다. 아라시는 이즈미가 무슨 말을 어떻게 덧붙이는 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어보였다. 평소와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화면을 보고 활짝 웃더니 윙크를 했다.

 

하여튼 대단하네.”

 

순식간에 바뀐 표정과 자연스럽게 하는 윙크에 이즈미는 감탄했다.

 

됐어?”

 

아라시의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다시 띠링, 하는 소리가 났다. 미션완료창이 떴다.

 

예쁘게.”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말이 나왔다. 이즈미의 말에 만족스러운 대답이라며 좋아하던 아라시는 삼만 엔이 적립된 것을 확인하고는 다음 스테이지를 바로 눌렀다.

 

* * *

뭐야. 나까지 나와야해?”

이즈미쨩, 돕기로 했잖니?”

아 진짜. 내 얼굴은 안 나와서 하기로 한 거였잖아.”

어머? 그런 말 한 기억은 없는데?”

얄밉게 굴지 말지? 얼굴까지 같이 보인다고 한 적은 없다고?”

그러면 나 혼자서 이즈미쨩한테 그러고, 또 그래?”

하아?”

똑바로 말 해줄까?”

아라시는 이즈미에게 공격적으로 팔짱을 껴오며 물었다. 이즈미는 말하면……!”이라고 말하며 아라시를 떼어내는 데 힘을 거의 쏟았다.

 

 

 Live Game Stage 2nd 

 

두 번째 스테이지는 유명인사와 함께 하는 것이었다. 아라시는 그것을 보고 이즈미의 옆에 딱 붙었지만, 이즈미는 그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유명인사와 찍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닌데, 돈을 아무리 준다고 하더라도 이런 미션을 주는 것이 찝찝하기도 했다.

 

이거 방송으로 나가는 거 아닌가?”

 

이즈미는 화면에 대고 그렇게 물었다. 답을 해줄 리가 만무했다. 정확한 답은 듣지 못했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여러 가지로 난감했다. 아라시와 찍는 건 둘째 치고, 그렇게 돈도 안 되는 사진으로 남아 웹상에서 돌아다닐 것을 생각하니 끔찍해서였다.

 

더군다나 이런 패션이면 더 난감하고. 이즈미는 제 차림새를 보았다. 아라시와 확실히 비교되는 편안한 옷차림이었다. 집에서까지 악착같이 화장을 하고 있는 아라시가 바로 오늘을 위해 그래왔는지 의심까지 하게 되었다.

 

어쨌든, 이즈미는 돕기로 했으니 돕기는 해야했다. 선글라스를 쓰려고 잡았지만 저지당했다. 그래서 모자를 선택했지만 그것마저도 인식이 되지 않았다. 결국 짜증이 잔뜩 난 이즈미가 물었다.

 

왜 안돼? 나루군은 유명인사가 아닌가?”

내 얼굴은 이미 인식해서 그럴 걸?”

짜증나게 구네. 기계 주제에.”

기계에 짜증내는 이즈미쨩이 귀여우니까 한 번만 찍자, ?”

이거 파파라치 앱 아니야?”

 

이즈미는 그렇게 말하며 Live Game 유명인사라고 적어 검색해보았다. 모 브랜드의 캐릭터 피규어부터 영화관의 등신대까지. 사실 굳이 살아있는 유명인사가 아니더라도 성립하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즈미는 그 사실을 아라시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이즈미는 이 사실을 아라시가 알더라도 자신과 굳이 사진을 찍을 것이라고, 이후로도 여전히 믿었다.

 

두 번째 스테이지만에 음모론까지 내세우는 이즈미를 보던 아라시는 고개만 저었다. 확실하게 아닌 거 맞아? 쏘듯 물어오면서도 표정은 그렇지 않은 이즈미의 말에 아라시는 지쳤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즈미쨩. 꼭 이런 게 아니라도 우리, 찍을 수도 있잖니? 우리가 그러면 안 되는 사이는 아니잖아.”

……그러면 안 되는 사이는 아니지만, 나루군하고 내가 딱히 그럴 사이도 아니잖아?”

 

이즈미는 지난 번, 아라시에게 대차게 거절당했던 날을 떠올리며 말했다. 애초에 빙 둘러 한 말이기는 했지만, “우리 이제 잘 해볼까?”라는 말에 지금도 우리는 잘 하고 있잖니?”라고 대답하는 사람과 뭘 더 한다는 건지. 이즈미는 카메라 화면에 잡히는 아라시와 자신을 보고 있으니 그렇게 처량해질 수 없었다.

 

이번만이야.”

에에, 다음에도 해줘야하는 거 아니야?”

하아? ?”

돕기로 했잖아. 한 입으로 두 말?”

두 입으로 두 말 할 거니까.”

그러면 세 입으로 한 말 해줘.”

……짜증나. 뭐해. 빨리 찍어.”

 

아라시는 아까의 지쳤다는 표정은 싹 지우고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으며 찍었다. 잠깐! 하는 이즈미의 짧은 소리에도 아라시는 그대로 셔터를 눌러버렸다. 화면이 캡쳐 되는 것처럼 보이더니 미션 완료가 떴다. 십만 엔. 이런 상태로 가다가는 오늘 내로 백만 엔도 모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즈미는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 게임이 금방 끝날 것이라는 (아주 개인적인) 약간의 희망을 가졌다.

 

이러다 금방 모으겠다. 우리 지금이라도 표 예매할까?”

우리?”

 

아라시의 입에서 나오는 우리라는 단어는 언제나 어색하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색한 것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어색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즈미는 아라시의 우리라는 단어를 곱씹다가 답했다.

 

이 게임 오늘 끝나면. 끝나면 해. 원래 들어오고 쓰는 거지, 돈은 들어올 걸 대비해서 쓰는 건 아니잖아?”

빡빡해 이즈미쨩.”

미안하게 됐네.”

 

이즈미는 아라시에게서 다시 핸드폰을 빼앗아들었다. 그리고 화면을 아라시에게 비추어 보았다.

 

화면 안에 들어온 아라시는 꼭 제 멋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딱히 자신의 말을 듣는 것은 아니었지만, 화면을 사이에 두고 아라시를 보고 있자니 새삼스러운 거리감이 느껴지면서도 꼭 제 것 같았다. 이대로 화면을 꺼버리고 저 혼자 볼 수도 있는 일이었고, 미션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걸 말하면 아라시는 어쨌든 그런 모습을 보일 것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다음도 할래? 다음은 십칠만 엔.”

좋아. 뭐니?”

……뭐야?”

뭐냐니까 되려 묻는 게 더 뭐야, 이즈미쨩?”

…………. 눌러버렸어. 삼 분.”

 

뭐라고? 아라시는 이즈미의 손에 들린 것을 빼앗았다. 화면에 적힌 미션은 별 것이 아니었다. 화면을 볼 사람들에게 손키스 하기. 별 것도 아닌데? 아라시는 이즈미의 말투를 똑 닮게 해서는 말했다.

 

, ……. 미안.”

거짓말. 이즈미쨩, 안어울리니까. 그런 말.”

아니거든? 해봐.”

 

이즈미는 아라시에게 화면을 비추었다. 보고 싶었다. ? 사실 이유는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대차게 거절도 당한 마당에 더 이유를 캐볼 필요도 없었다. 보고 싶었으니까 보고 싶은 것일 뿐이었다. 이번에는 아라시의 상반신이 전체적으로 나오게 화면을 잡았다.

 

잘 나와?”

어어. 잘 나오니까.”

 

대충 대답하고는 버튼을 눌렀다. 띠링, 하는 소리가 들리고 아라시가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을 사이에 두니 눈을 마주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평소에는 붙어 있어도 눈을 맞출 일이 없어 모니터링할 때가 아니면 딱히 볼 일도 없던 눈을 실시간으로 마주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그렇게 넋놓고 화면 속의 아라시와 눈을 맞추고 있는 이즈미를 앞에 두고, 아라시는 아주 잠깐 더 웃었다. 그리고 괜히 제자리에서 한 바퀴를 돌더니 자연스럽게 제 손가락 끝에 키스를 하고는 화면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예쁘게 나왔어?”

 

그렇게 묻는 아라시에게 이즈미는 딱히.”라고 답했다. 치이, 하고는 삐졌다는 티를 단단히 내는 아라시가 화면에 잡혔다. 이대로 더 하다가는 위험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즈미는 자연스럽게 다음 스테이지를 보고 있었다.

 

뭐야. 나루군, 다음 스테이지는 나가야겠는데?”

어머 그래?”

* * *

아라시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이즈미가 찍은 화면들은 이미 Live Game의 메인 화면에 올라갔다. 이즈미와 같이 있는 사진은 메인 화면과는 거리가 먼 모양이었다. 아라시를 기다리며 몇 번을 새로고침했지만, 헛수고였다.

 

왜 안올라가는데? 모델이 둘이나 있는데. 모델만 둘이야? 아이돌도 둘이라고.”

 

이즈미는 고객센터라고 적힌 것을 눌러 그 말을 그대로 받아적었다가 취소를 누르고는 다시 메인으로 돌아왔다. 누군가에게 아라시와 같이 있는 것을 딱히 보이고 싶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라시가 자신에게 한 것 같은 윙크며 손키스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이라고 마음에 꼭 드는 것은 아니었다.

 

아아~, 짜증나.”

 

아라시가 한 그 몇 가지의 행동들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세나 이즈미의 존재는 쏙 빠진 채로 올라가는 것은 정말 불쾌했다. 불쾌할 이유는 딱히 없었지만.

 

나루군, 아직 멀었어?”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리렴, 이즈미쨩. 이렇게 기다리지 못해서 되겠어? 원래 숙녀는 준비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구.”

뭘 얼마나 하려고 그러는데?”

 

이즈미는 방문을 꼭 닫고 옷을 갈아입고 단장하는 아라시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방에서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듣는 것에 쏟을 신경은 없었다. 메인 화면에 있는 아라시의 사진은 실시간으로 갱신이 됐고, 그것은 엄청난 조회수와 추천수를 실시간으로 자랑하고 있었다.

 

, 칠만엔.”

 

누군가 아라시에게 칠만 엔을 투자했다. 투자의 개념이 이 앱에서 맞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현직 모델 겸 아이돌에게 할 만한 것은 투자밖에 없으니까. 이즈미는 아라시의 사진이 칠만 엔에 팔렸다는 것보다는 투자를 받았다는 쪽이 그나마 마음에 편해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 칠만 엔?”

 

언제 나왔는지 아라시가 화면을 보고 있었다.

 

어머, 메인에 올랐네. 이즈미쨩이랑 찍은 게 올랐으면 좋았는데.”

 

언뜻 들어도 빈말이었다.

 

마음에도 없는 말은 여전히 잘도 하네.”

재능으로 봐줘, 그런 거 아니겠니?”

그러시던가.”

 

이즈미는 부정도 하지 않는 아라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언제나 아라시가 옷을 입고 나면 하던 것이라 이번에도 습관적이었다.

 

이즈미쨩, 고약한 취미야. 다른 사람은 그렇게 보지도 않으면서.”

그거야 내 마음이고. 상관할 바 아니잖아? 나가기나 하자고.”

으응, 근데 다음 미션은 뭔데?”

 

아라시는 미션도 모르고 옷을 입고 화장을 한 것이었다. 뭐냐고? 그러고보니 이즈미도 자세히 읽지는 않았다. 밖에 나가서 뭘 한다고 했는데……. 화면을 켜서 보니 이십팔만 엔을 걸고 떠있었다.

 

프리허그.”

 

 

 Latter Half of the Live Game 

 

아라시의 입장에서는 이즈미가 무엇을 걱정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션이었다. 시간 내내 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수도 적었기 때문이었다.

 

이즈미 역시 아라시가 힘들 것을 지레짐작하여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나 이즈미에게 나루카미 아라시는 (적어도 외관은) 강한 사람이었으니까. 이즈미는 아라시보다는 그를 촬영해야하는 자신을 더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즈미는 자신이 더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사실, 걱정보다는 불편함이 더 크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즈미는 이유 모를 불편함을 안고 다음 스테이지를 향해 가야했다.

 

그 사이에 메인에서 투자를 받은 돈으로 거의 백만엔에 가까운 돈이 모여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라시에게 돈이 얼마나 모였는지 말하지 않았다. 이전의 스테이지를 진행할 때에도, 이즈미를 향해 웃으며 태연하게 얼마나 모였니?”하고 질문하는 아라시에게, 곧 들킬 사실임에도 아직 만이 남았잖아, 짜증나!”라고만 답했다. 아라시에게 묻지도 않고 계속 다음 미션을 승낙하고 있는 자신을 이해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어서 빨리 이 게임이나 끝내고 싶었다.

 

제법 잘 차려입은 아라시와 집을 나선 이즈미는 선글라스며 모자 따위를 착용해야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나루카미 아라시가 세나 이즈미와 같은 집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을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이런저런 시끄러운 이야기가 나와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던 이즈미의 입장에서 이런 사실은 다소 실망스러울 때도 있는 부분이었다.

 

아라시가 나서고, 이즈미가 화면을 잡는 순간부터 시작된 이 미션은 아라시의 유명세로 인해 사람이 몰린 덕에 한 편으로는 쉽게 해결되었다. 아라시가 가서 무어라 말을 하면 상대는 있는 힘껏 아라시를 껴안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할당된 여덟 명을 시간 내로 해야 하는데 이름도 모르고 얼굴은 기억도 안날 사람들이 아라시를 쉽게 놓아주지 않아서였다.

 

좋은가보지?”

 

화면을 잡고 아라시와 상대를 그것도 여덟 명이나 잡는 이즈미의 표정은 정 반대였다. 짜증이 났다. 왜 이런 것을 잡고 있어야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서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돕기로 했으니까 도우면 될 거 아니야.”라는 말로 간단히 정리되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단순한 사실일 뿐이었다. 왜 이걸 시켰지? 나한테? 이즈미는 굳이 자신에게 시킨 아라시를 이제야 의심했다.

 

하지만 이즈미는 곧 그 의심도 그만두었다. 시간이 다 되고, 미션 완료의 창이 뜨자마자 종료를 알렸음에도 상대는 아라시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기색을 보여서였다. 이대로 따라다니면 그것대로 골치가 아팠지만, 골치 아픈 것보다는 괘씸한 마음이 더 들었다. 이즈미를 쳐내던 아라시가 뒤돌아서면 기억하지도 못할 사람과 저러는 것이 싫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것을 찍고 있는 자신은 더 싫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세나 이즈미를 모두가 보는 꼴이었으니까.

 

이즈미쨩, 잘 찍혔어? 그런 김에 우리 사진도 한 장 찍어줄래?”

 

아 짜증나게, 가지가지 하네. 이 소리가 절로 났다. 그러면서도 돕기로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잠자코 찍어주고 있는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짧은 시간에 수많은 미션을 시키는 꼴이었는데, 그것을 고분고분하게 다 하고 있는 아라시를 보고 있으니 있는 열 없는 열을 다 받는다는 표현이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이즈미는 대충 찍어 상대의 얼굴을 뭉개버리고는 가자고 했다.

 

오늘은 그만하자.”

 

옆에 와서 사진을 확인하려는 아라시 쪽은 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만 남겼다.

* * *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한 이즈미는 제 집이 아닌 아라시의 집으로 갔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아라시에게 건네주고 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으나, 그럴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었다.

 

제 집으로 걸어가는 이즈미를 보고 있는 아라시는 웃음이 가실 기미가 전혀 없었다. 흥얼거리면서 이즈미의 뒤를 따라 걸어, 그보다도 더 늦게 집에 도착했다.

 

놀려?”

 

대뜸 그렇게 소리치듯 묻는 이즈미를 현관에서 마주한 아라시는 멍하니 이즈미를 보았다. 초점은 정확히 이즈미에게, 표정은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쩐지 대수롭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습관적으로 본다는 것 말고는 다른 방향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라시는 화가 난 이즈미를 잘 달래서 앉혔다. 이즈미의 앞에 따뜻한 물과 차를 한 잔씩 내어놓았다. 마시고 싶은 거로 마셔, 이즈미쨩. 차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놀리냐고 물었었지?”

 

그 차분한 목소리로 사실을 확인하고자 이즈미의 말꼬리를 뒤늦게 잡아끌었다. 이즈미는 뭔가 잔뜩 불만이 있는 얼굴을 해서 눈동자만 굴려 아라시를 쏘아보았다. 후후, 하고 웃으며 어깨를 으쓱이는 것 말고는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아라시는 난감했다.

 

이즈미에게 이것을 왜 했나 설명했으면 좋겠지만, 정말 재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처음 말했던 대로, 혹시나 높아질 수위 때문에 츠카사를 부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는 이즈미가 가장 안전하다는 것이 아라시의 생각이었고, 이즈미가 승낙했으니 전혀 문제없는 일이었다.

 

이 게임, 왜 하겠다고 한 건데? 재미 말고.”

 

미칠 노릇인 사람도 있다고. 그렇게 덧붙여 말하는 이즈미는 아라시의 생각은 전혀 관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이즈미가 제 생각을 읽어주기는 바라지도 않았고, 그것은 또 끔찍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고 제 멋대로 다시 묻는 이즈미 역시 아라시에게 난감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이즈미쨩, 내일도 하고, 모레도 하고, 우리 그렇게 만나다가 답을 찾을 수도 있는 일이잖니?”

이런 걸 하려고 만나자고?”

그러면?”

 

말문이 막힌 이즈미를 대신해 아라시가 또 물었다.

 

다른 특별한 이유로 우리가 만날 필요가 있니? 이즈미쨩,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내가 언제……!”

 

찻잔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이즈미가 아라시를 보았지만, 눈은 마주칠 수 없었다. 아라시는 이즈미쪽은 상관도 안하는 눈치였다. 저 편한 자세로 앉아서 말린 과일이나 곱게 뜯어 먹고 있었다.

 

이봐, 나루군?”

, 듣고 있어. 왜 그러니?”

왜 하려고 하는 거냐고, 물었잖아.”

차암. 이즈미쨩, 질리게 그러지 말아줘.”

?”

이즈미쨩도 같은 거 두 번 말하는 거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니?”

 

아니라고 답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라시의 기억에 남아있을 이즈미는 누구보다도 같은 것을 반복해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이즈미는 헛기침으로 대충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하지만 아라시는 이즈미의 뜻대로 대화가 흘러가게 둘리가 만무했다. 그는 이즈미가 제법 혹할만한 몇 개의 이유 중에서 가장 무난하면서도, 또 어떻게 듣자면 제법 자극적인 말을 골라 말했다.

 

있지, 나는 이즈미쨩이 도와주는 게 좋아.”

 

아라시의 말에 이즈미는 잠시 생각하다, 곧 평소의 상태를 유지하며 답했다.

 

그야 당연하겠지. 애초에 도울 녀석은 없잖아?”

 

문자 그대로는 다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일지 모르겠으나, 자신이 하면 괜찮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이즈미는 거침없이 말했다.

 

나루군. 내가 아무것도 못하고 보고만 있으면 좋아?”

그야, 다른 사람이 봐주는 건 아니니까? 이즈미쨩은 날 보고 무슨 생각을 해도 괜찮으니까.”

하아? 다른 사람이 보라고 아이돌 하는 거 아니었나?”

이즈미쨩이 하라고 했잖니? 시킨 사람도 이즈미쨩, 이렇게 만든 사람도 이즈미쨩이잖아.”

아아~, 그러니까 죄다 나 때문이다?”

 

이즈미는 마른 세수를 하는 것 말고는 끓어오르는 화를 삭일 수 없었다. 죄다 자기 때문인 상황이라는 것은 백번도 더 인정하는 것이었지만, 당사자의 입에서 듣고 있는 것은 또 색달랐다.

 

나는,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관심이 없어. 그냥 원하는 걸 보여주고, 기뻐해주는 게 좋아. 그렇게 만든 사람은 이즈미쨩이잖아? 내가 아는 세나 선배는 그랬는데. 아니니?”

 

아직 몰라도 한참 모르고, 멋대로 구는 것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이즈미는 저를 부르는 호칭도 이리저리 돌려가며 말을 풀어내는 아라시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럴 지도 모르겠네.”

그렇지?”

동의할 생각은 없고, 추임새처럼 넣은 말이었다. 서로는 서로에게 그랬고 이야기는 그렇게 마무리는 지어지지 않고 끝나버렸다.

 

자고 갈래?”

 

 

 Last Game 


어차피 제 집으로 돌아가도 열만 내다가 전화를 해서 아라시에게 쏘아붙이는 것 말고는 할 일도 없던 이즈미였다. 자신이 그럴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라시의 제안을 승낙했다.

 

뭐 예쁘다고 이러나 모르겠네.”

 

이즈미는 제 옆에 딱 붙어 누워서는 흥얼거리며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는 아라시가 분명히 들을 수 있게 말했다. 한 단어 또박또박 말했다. 이즈미의 그 말에 반응한 것은 아라시가 아닌 아라시의 핸드폰이었다.

 

핸드폰에서는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자동 답변이 나왔다. 하아? 기가 막힌 이즈미는 아라시가 들고 있는 핸드폰을 빼앗았다.

 

뭔데? 기계 주제에.”

어머, 이즈미쨩 말에 반응해버렸네~.”

 

소리가 나더니 아라시는 안경을 쓰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곧 미션 완료가 되었다는 소리가 들렸다. 이즈미는 그 소리를 듣고, 그 사이에 금액은 어쩌면 백만엔을 웃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핸드폰을 빼앗았다. 금액을 확인하기 보다는, 또 메인을 어떤 모습으로 장식할지 궁금해서였다.

 

즐거워하지 말지?”

 

이즈미는 아라시의 안경쓴 모습을 확인하려고 빼앗았던 핸드폰의 화면을 꺼서 아라시에게 돌려주었다. 종일 신경 쓰고 열 받아 잠이 쉽게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지쳤던 탓인지 금방 잠이 들었다. 아라시는 다음날에 켜보겠다고 약속한 Live Game의 앱을 눌렀다.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나며 어플이 실행됐다. 가슴을 졸이며 이즈미쪽으로 반쯤 돌아누운 아라시는 상체를 조금 들어 그를 찬찬히 보았다. 이즈미는 그 잠깐 사이에 제법 깊게 잠이 들었다. 재차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미안. 이즈미쨩?”

 

아라시는 화면의 아래에 쌓인 적립금과 자신의 얼굴이 있는 메인 화면을 보았다. 이즈미가 피곤해 놓친 것이 분명했다. 이미 미션 성공 금액으로 받을 수 있는 돈은 백만엔을 훨씬 웃돌고 있었다.

 

아무래도 종일 아라시가 한 그 몇 개가 베스트 샷으로 올라있는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도 간간히 들어오는 후원금인지 광고비인지 알 수 없는 것 자세한 경로는 알 수 없었으나 많이 보면 많이 볼수록 수익금도 늘어나는 모양이었다. 으로 적립금은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쌓여가고 있었다.

 

아라시는 커튼을 치고 캄캄한 방에서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무음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거듭 들 정도로 시작음 역시 컸다. 이즈미가 뒤척이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그 정도로 끝났다. 아라시는 화면을 처음 보았다.

 

화면 속에서는 당연히 나올 줄 알았던 가벼운 키스가 나왔다. 밤이라 이런가? 그는 지금까지 이즈미가 자신에게 요구했던 것과는 꽤 다른 것이 요구되는 것을 보고 저 나름대로 합리적 결론을 내리고자 했다. 아라시는 은은하게 비치는 창밖의 빛에 의지해 겨우 형체만 보이는 자신과 이즈미를 잡았다. 그리고 이즈미의 볼에 제 입술을 얹었다.

 

이즈미는 그 짧은 순간에 반응이라도 하듯 아라시 쪽으로 돌아누웠다. 아라시는 그 와중에 화면에서 17.8만엔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다. 다음 스테이지를 누르니 3초간 키스가 떴다. 확실히 연달아 나오는 미션은 모두 (이즈미와 하던 것에 비하면) 꽤나 상승한 수위였지만, 밤이 가까워지니 이해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제 멋대로 이해를 하는 오지랖까지 부린 아라시는 이즈미의 입술에 제 것을 얹었다. 그리고 스타트 버튼을 누르니 정확히 3초 뒤에 미션 완료가 떴다. 다음까지 할까 했으나, 별 마음도 없다고 믿었던 이즈미가 예민하게 반응하던 탓에 그렇게 Live Game1일차는 마칠 수밖에 없었다.

* * *

이상한 일이었다. 이즈미에게 그렇게 게임을 도와달라던 아라시는 어느 샌가부터 게임과 관련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저녁 때 밥을 먹고 같이 자는 것이 전부였다.

 

오늘도 갈까?”

 

이즈미는 전화를 하며 아라시에게 물었다. 사실 이즈미는 이미 아라시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라시는 저를 찾아오는 이즈미를 위해 문까지 열어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올 거면서 왜 물을까?”

최소한의 예의 정도로 하자고?”

너무해. 선 긋고 있잖아.”

? 애초에 선 긋는 건 그쪽이고.”

 

이즈미는 익숙하게 다음 날 미팅을 준비하고는 침대에 누웠다. 정확히 십오 분이 지나고 알람이 울리자, 얼굴을 덮고 있던 팩도 벗겨버렸다. 손으로 제 볼을 두드려 흡수시키고 천장을 보고 누워있는 이즈미의 옆으로 아라시도 왔다.

 

나루군.”

할 말 있니?”

아아, . 특별한 건 아니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쉽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최근 일주일 동안은 잠잠하네? 또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건데? 별 희한한 질문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지만, 요지는 하나였다.

 

요즘은 게임 안 해?”

이즈미쨩이 싫어하잖아.”

내가 찍는 건 괜찮은데.”

그러면 뭐가 싫었니?”

다른 녀석들이랑 있는 걸 너무 노골적으로 찍잖아.”

 

이즈미는 거기에 다른 녀석들에 대한 부수적인 정보를 덧붙였다. 얼굴을 처음 봤고, 믿을 수 없으며, 이름도 모르고 출신도 모르고……등등.

 

이즈미쨩.”

.”

나 좋아해?”

 

가볍게 물었고, 이즈미는 또 가볍게 답했다.

 

잠이나 자지?”

 

퉁명스러우면서도 어딘가 웃음기가 서린 목소리에 아라시는 치이, 하고 간투사를 넣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곧 이즈미가 잠이 들었다. 아라시는 화면을 최대한 어둡게 하고 손으로 스피커부분을 막았다. 그러고는 다시 Live Game을 시작했다.

* * *

이즈미가 이 게임을 하지 않는 게 천만 다행이었다. 본인 기사도 잘 찾아보지 않으니 아라시가 뭘 하는지 알 수 없을 확률이 높았다. 아라시는 어느새 메인에 있는 저와 이즈미의 윤곽만 있는 여러 키스 동영상 을 보았다. 확인하는 것으로 묘한 승리감이 들었다.

 

이미 한 번 리셋한 이후로, 아라시의 목표였던 백만 엔까지는 앞으로 한 번이면 됐다. 더 많은 횟수를 채워야했지만, 압도적인 조회수 덕분에 아라시는 이 게임을 이번에도 빨리 끝내야만 할 것 같았다. 띠링, 하고 게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게임 고유의 소리가 두 번 울렸다. 마지막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두 번이 울린다는 팝업창을 가볍게 무시했던 아라시는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다.

 

결국 크게 나는 두 번째 소리에 이즈미는 얼핏 잠이 깨어버렸다.

 

좀 자자.”

 

그렇게만 말하고는 뒤척이는 이즈미의 뒤에 딱 붙어 누워서는, 으응. 하고 애매하게 답한 아라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오늘 끝내지 않으면 끝낼 수 없었다. 시간이 늘어 이제는 무려 7분이나 채워야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다음 스테이지에서는 정말 일을 치러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럴 수는 없었다. 이즈미가 모르게, 마음도 없는 것 같은 상태로 이런 짓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니까.

 

이즈미의 숨소리가 골라지고, 아라시는 이즈미의 몸을 조금씩 돌렸다. 그리고 다시 천장을 보고 누워있는 이즈미에게 몸을 기댔다. 투정 어린 이즈미의 잠꼬대를 받아주며 천천히 입술을 포갰다.

 

아라시는 버튼을 누르기 위해 화면을 응시해야했고, 그러면 이즈미와 자신이 보였다. 꽤 오래 입술을 맞대고 있었음에도 미동도 하지 않는 이즈미 덕분에 만만으로 안심한 아라시는 마음 편하게 버튼을 눌렀다. 시간 내로 채우고 나면 이제 마지막이고, 그간 이즈미와 지냈던 시간을 위해서라도 여행 한 번쯤이야 갈 수도 있었다.

 

백만 엔을 그냥 써도 좋지만, 이런 것도 추억이니까. 아라시는 자신이 게임을 시작한 이유를 그렇게 합리화하기로 했다. 두 번째 마지막 날인 오늘이 되어서야 말이다.

 

그렇게 편하게 마지막 스테이지가 될 그 게임에 임하려는데, 화면 속의 두 사람은 모두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놀란 아라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즈미가 어떤지 확인해야했지만, 화면과 이즈미의 얼굴을 둘 다 보기 어려웠다.

 

촬영을 위해 들고 있던 핸드폰이 이즈미의 배 위에 얹어지고, 손 역시 그 핸드폰을 따라 내려가는 꼴이었다. 주객이 완전히 전도된 이 상황은 단순히 그것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었다. 맞닿은 이즈미의 입술이 호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을 무렵, 이즈미는 두 손으로 아라시의 머리를 감싸 제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제한된 시간을 한참 넘기고도 화면에 두 사람이 잡히지 않자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Game Over 창이 떴다. 자동 종료가 되고, 앱이 잠겼다는 안내 메시지가 읽혔다. 그제야 이즈미는 아라시를 놓아주었다.

 

잘도 했네? 이런 짓.”

……, 이즈미쨩.”

꿈인가 했는데, ? 잘도 했어?”

 

때로 말은 문자 그대로만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이즈미의 말끝에서 묻어나는 묘한 확신과 자신감, 그리고 웃음기는 쉽게 문자로 담아낼 수 없는 것이었다.

 

숨통이 트이고 호흡을 되돌린 후에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지만, 아라시 혼자 급히 만들었던 이 상황에 맞추기라도 하려는 듯 이즈미 역시 그간 아라시가 이즈미에게 했던 것을 하나씩 해낼 심산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눈매가 살아나는 이즈미를 보는 순간, 아라시는 이 상황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예상할 수 있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몸이 동하는 대로 하기로 했다. 악착같이 핸드폰을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어서는 그의 장단에 맞추어 주기로 했다.

 

Live Game은 저 나름대로는 매정하다. 그들이 어떤 상황에 맞닥뜨릴지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단지 재차 알림을 주었음에도 반응이 없는 유저의 모든 적립금을 회수하고는 그대로 잠겨버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