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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포본 / 세나나루, 첫 바람, 나비처럼

POSTED ON 2017. 6. 26. 21:51

▶ 2017. 어나더 스테이지 제 2회 세나나루 배포본입니다.

▶ 단편에 있는 [유곽 AU] 의 두편 재록과 이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첫 바람, 나비처럼

 

 

 

 

 

바람도 불지 않는 무더운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회상을 시작했다. 기억을 더듬으며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꽤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입가에서 잔잔하게 퍼지기 시작한 웃음은 시원한 바람을 맞을수록 더해지는 것 같다. 기분 좋은 날이다.

 

오셨나봅니다.”

 

그 말에 살랑거리던 부채를 단호하게 접고는 뒤를 돌아보며 얄밉게도 웃었다. 부채로는 오른쪽 턱을 가볍게 치면서 말했다.

 

어머, 정말?”

 

누가 왔는지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어떤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지 금방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나루카미 아라시는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니까, 그 회상의 주인공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나루카미 아라시는 세나 이즈미를 만나러 가고 있다.

 

 

* * *

 

 

그가 세나 이즈미를 처음 만난 것은 며칠 전, 한 시장의 길 한복판이었다. 새 비단이 들어왔다고 하길래, 나루카미 아라시는 제법 모양새가 나는 짐꾼들을 데리고 비단을 떼러 갔었다.

 

그 맞은편에는 붓이며 이런저런 필기구를 파는 곳이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신경질적으로 붓을 고르고 있던 사람을 보았다. 처음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너무나도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워서였다.

 

어머, 저렇게 매섭게 말하는 사람도 있니? 예의라고는 어디에 갖다 박아버린 모양이네.”

 

예쁘게 좀 말하세요.”

 

웃으면서 침을 뱉는 소리를 하는 나루카미 아라시의 곁에 붙은, 제법 예쁘장한 여자 아이는 아라시의 귀에 발을 들어 올려 가까이 가서는 말했다. 아무래도 이런 일이 자주 있는 모양이었다.

 

들어도 어쩔 수 없는 걸.”

 

나루카미 아라시는 더 크게 말했다. 들은 것인지, 듣지 못한 것인지. 상대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래도 들었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 이유는, 그의 말 이후로 신경질이 줄었다는 것으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잠깐 만난 이후로, 솔직히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세나 이즈미가 아라시가 있는 곳으로 먼저 와서는, 아라시를 만나자고 청한 것이다.

 

 

* * *

 

 

세나 이즈미는 그날, 비난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미 짜증이 날 대로 나있는 상황이었다. 붓을 이렇게 신경질적으로 고르는 이유는, 한밤중에 펼쳐질 경박스러운 세나 이즈미는 몸을 섞는 것에는 이상하게도 결벽증과 같은 증세를 보이곤 했다. 장소에 간다고 생각해서였다. 때로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그렇다면 사랑은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대해서 물으면, 그는 그런 방식이 아니라면 무엇이든 좋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것도 중심가에서 가장 큰 유곽에 간다고 하니, 그는 앞으로 자신에게 덧씌워질 최악의 분위기를 붓으로나마 상쇄시키고 싶었던 것이었다.

붓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소리가 들리고 세나 이즈미는 잠시 말하는 것을 멈추었다. 하기야, 이런 사람에게 신경질을 낸다고 붓이 갑자기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일이지 않는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인장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소리가 난 쪽을 돌아보았는데, 자신에게 비난을 한 것 같은 사람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그는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자리를 떴다.

 

그게 저녁 전이었다. 세나 이즈미는 밤이 되고 유곽에 갈 때까지 정체 모를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또 했다. 그러면서도 닥치는 일에 부담을 지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필이면 그가 거절할 수도 없는 이유를 들어가며 말했던 탓이었다. 세나 이즈미는 모종의 이유로 큰 상단을 거쳐 정보를 입수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는데, 이 유곽에 그 상단 책임자가 있다는 소식을 들어, 기꺼이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소식 모두 출발길에 오르면서 듣게 된 것이었다.

 

그는 도대체 그 큰 상단을 유지하는 사람이 어째서 이런 곳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얼마나 방탕한 사람인가. 그럼에도 방탕함이 재산을 유지하는 것과 거래를 성사시키는 데에는 방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잡다한 생각을 하다 보니, 지나다니지도 않았던 유곽의 앞에 도착했다. 대단한 도령이 납시기라도 했는지, 어린 기생부터 제법 지위가 있어 보이는 기생까지 모두 나와서 그를 반겼다. 이런 분위기에 거북함이 치밀어 올랐다. 만약 약간의 취기가 돌았다면, 당장이라도 토기가 올라왔을 것이다.

 

기분 나쁜 것을 억누르며 입으로 숨을 쉬었다.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다. 왜 그러냐는 말에, 그는 낯설어서.”라고 답했다. 짧고 굵은 답에, 그의 옆에서 그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다시피 하던 한 어른이 허허,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래도 제법 마음에 드는 이도 있을 텐데. 상단을 이끄는 그 거물이 꽤 미녀라고 하던데. 미남이라는 소문도 돌기는 하지만, 뭐가 어떤가 싶네.”

 

세나 이즈미는 소름이 돋았다. 조금 더 나아가 과장해서 생각해보자면, 지금 당장 남색을 즐기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말 같아서였다. 바로 옆에서 이렇게 거북함을 불러 일으켜주는 대단한 사람은 참 상냥하게도 웃었다.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눈만 애써 웃는다는 표현이 딱 그에게 맞는 표현이었다.

 

방에 들었다. 그런데 세나 이즈미가 그동안 상상했던 곳과는 달랐다. 홍등이 밝힐 것 같았던 공간에는 홍등 대신 청등이 달려있었다. 그리고 상에 자리도 두 개뿐이었다.

 

그는 저의 옆에서 웃고 있던 어른을 보았다. 어울리지 않게 가벼운 행동으로, 어깨만 으쓱이고는 그럼 좋은 시간 되시게나.”라고 말하며 자리를 비키는데 당황스러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아마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흔히 통속적인 유곽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 덕분이었을 것이다.(그는 결국 이 파란 등이 가득한 방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 주인도 물론이고.)

 

오늘은 일적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해서 왔는데, 무슨 일이죠? 일이 생각보다 많아서, 구체적으로 일러주지 않으면 잘 나오지 않는데 말이야.”

 

문이 열리면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토록 감사 인사를 전하려고 하던 사람의 목소리였다. 여러 소리와 섞여 들었고, 그 여러 소리가 두 번 모두 달랐음에도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다만 지금은 조금 더 정돈된 목소리이다. 세나 이즈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이 열리고, 발끝부터 서서히 시선을 옮겼다.

 

훑으려는 건 아니고.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데,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만나서 우선 사과를…….”

 

그는 답지 않게 횡설수설 말했다. 짙은 청등으로 가득한 방의 주인의 얼굴은 한색과 잘 어울렸다. 지금까지의 모든 거북함은 붓도 아니고, 그의 고결한 사과 때문도 아니었다. 남녀를 애매하게 오가는 묘한 분위기가 이 일의 전부였다.

 

용건은 뭐니?”

 

얼핏 봐도 고급스러운 비단을 온 몸에 감고 있었다. 속이 비치지 않음에도, 몸의 곡선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게 몸을 잘 감싸고 있는 비단에 마치 다 벗었다고 하더라도 거짓 같지 않을 정도였다.

 

.”

 

세나 이즈미는 여러 말을 하지 못했다. 결심이 섰다면, 이 청등의 유곽에 앞으로도 종종 찾아올지도 모르겠다는 것 정도였다.

 

 

 

세나 이즈미가 처음 청등으로 가득한 그 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는 긴장해 굳어있었다. 목석같은 문인의 전형적인 모습이기도 하고, 자극적인 것에 처음 노출되어 유약한 사람일 뿐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묻는 사람을 보고 그 긴장에 긴장을 더할 수밖에 없었다.

 

용건은 뭐니?”

 

그는 이 청등의 집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라면 환상을, 단순한 상상이라면 상상을 하고 있었다. 환상과 상상의 그 종이 한 장 차이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처음 오니 그랬다. 앞에서 슬며시 웃는 사람은 청등과 잘 어울렸고, 그가 앞으로도 종종 보고 싶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고 싶은가? 그것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세나 이즈미는 원하는 게 있어서 왔는데.”라고 답했다. 한마디 떼기조차 힘들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정확히 구분이 가지 않아, 그는 실례를 범하는 것을 알면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앞에 있는 그 사람의 몸을 훑어보았다. 하지만 도무지 짐작을 할 수 없었다. 분위기가 그냥 그랬다.

 

어떤 용건이니?”

 

앞에 놓인 술상에 술을 따르는 손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저 손을 거쳐 지나간 사람은 몇이나 될 것이며, 화려한 보석은 누구의 주머니에서 나왔겠는가. 그는 이유 모를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익숙한 이의 앞에서 하나도 모르는 자신을 향한 것인지, 아니면 피로 이루어진 상단에 대해 묻기 위해서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은 말하기가 그런 걸까? 그러면 말이지?”

 

그는 자신의 앞에서 술잔을 권하지 않고 혼자 마시는 아직은 정체를 완전히는 모를 상단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비가 오는 날에, 말해줄래?”

 

이유 모를 말이었다.

 

 

* * *

 

 

그 이후로 비가 올 것 같은 날이면, 세나 이즈미는 청등의 그 집으로 갔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이 매번 만나러 오는 사람의 이름이 나루카미 아라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늦어서 괜히 사과해야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그는 그렇게 처음 비가 오는 날에, 사과만 하고 돌아갔다. 그날도 어김없이 아라시는 이즈미에게 술잔을 권하지 않았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다. 보통은 권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덜 부담스러웠고, 도로 물려서 나가는 술상을 빤히 보고 있는 (세나 이즈미를 이 청등의 화려한 집으로 데려온) 어른이 이따금 확인할 때에도 적당히 체면이 섰다.

 

두 번째로 비가 오는 날에 왔을 때에는, 비가 올 것 같더니 끝내 오지 않았다. 한두 방을 떨어질 것처럼 굴더니 금방 날이 갰다. 그러고는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이즈미가 아라시를 만나러 가지 않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를 대신해 동냥을 하러 나왔고, 나라 안은 시끄러워질 정도로 가물었다.

 

그래서 그는 청등의 그 집으로 가는 것 자체가 눈치가 보였다. 귀찮을 정도로 그를 부르는 윗사람들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는 것도 이유라면 한 이유였다. 그래도 굳이 가겠다고 하면, 때를 봐서 가면 되는 일이었지만 아직 그렇게까지 갈만한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

 

세 번째로 비가 오는 날은, 곧 그칠 것 같았다. 해가 떠서는 빗방울이 어디로 떨어지는지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즈미가 그렇게 생각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두 번째 비가 오던 날의 기억이 아직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탓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날씨에 민감한 사람이었나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날씨가 아닌, 다른 만남에 민감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비가 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시원하게 내리지는 않았다. 세간에서는 비가 오는 것을 동물에 비유하는 말이 들렸다. 시집가고 장가를 가? 이즈미는 동물의 이름이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분명 혼담과 관련된 말에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어쨌든 세 번째 비가 오는 날, 그래도 누군가를 만나고 싶으니 유치한 표현을 빌려보자면, 해가 빗방울만큼이나 그 자신을 예의주시 하고 있어, 청등의 집으로 가는 것을 지켜보기라도 할 것 같은 날이었다. 세나 이즈미는 괜히 부끄러워서 가지 못했다.

 

가서 단 한 번도 그와 소위 말하는 엄한 짓은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루카미 아라시가 자신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발가벗은 기분이 들었던 탓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진짜 부끄러웠던 이유는 나루카미 아라시가 자신을 보고 있지 않고, 그는 고급스러운 도자기 술잔에만 관심이 있었으며, 그렇게 발가벗은 기분은 순전히 자기 혼자 느낀다는 데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이즈미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바로 나루카미 아라시가 먼저 세나 이즈미의 집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그런 곳 아직도 이즈미는 아라시에게서 경계를 완전히 풀 수는 없었다. 에서 사람이, 해가 뜬 대낮에 온다는 것은, 그의 생각 범위 밖이었다. 행여나 주변에서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나 싶었지만, 아라시를 대하는 사람들을 보니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어보였다. 새로운 시대에 자본이 만든 계층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는 아라시가 새삼 괜찮아보였다.

 

어쨌든 아라시는 집안의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안내를 받아 이즈미를 만날 수 있었다. 신분이 뒤집힐 정도로 우스운 일이 곧 벌어졌다. 아라시가 오게 한 것에 이즈미가 오히려 책을 들은 것이었다. 하지만 아라시는 이즈미가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전혀 유감이 없어보였다. 그는 공손하게 인사했고, 이즈미를 보고 웃었다. 세나 이즈미는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루카미 아라시를 낚아채 듯 해서는 방으로 불렀다.

 

무슨 일로?”

 

비가 오는 데, 오지 않길래.”

 

너무 대낮이고.”

 

세나 이즈미는 시시한 변명으로 답을 대신했다. 나루카미 아라시는 청등의 그 집에서 그를 거들떠도 보지 않던 것과는 다른 눈매로 세나 이즈미를 보았다. 짧고 날카롭게 보고 말았던 것과 달리, 상당히 길고 부드러운 시선이었다.

 

다음번에 내리는 비는 꼭 밤에 내리라고 해야겠는 걸?”

 

뜻 모를 말을 남긴 아라시는 그 자신의 손에서 벌어졌다 접혔다 하는 살 부채를 탁 소리가 나게 세게 접어서는 이즈미의 다리 사이에 꽂아두고 나왔다. 세나 이즈미는 나루카미 아라시가 나간 후에 그 부채를 똑같이 벌렸다 접었다 했다.

 

그리고 그날 밤이 되어서는, 꼭 그 부채가 비를 부른 것처럼, 습한 기운에 끌리듯 내리는 비가 쏟아지다 못해 퍼부어지기 시작했다.

 

 

 

* * *

 

 

비가 오는 데 어디를 가시려고 그러세요?”

 

몸종 하나가 비를 맞으며 쪼르르 달려 나왔다.

 

갈 데가 있어서.”

 

요즘 청등가에 가신다는 소문이 돌아요.”

 

, 일이 있어서. 뭐야, 그 눈은? 가서 내가 엄한 짓이라도 한다, 뭐 그런 거?”

 

어휴.”

 

몸종은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그는 빨리 일 끝내고, 나도 그 이상한 곳에서는 나오고 싶다고.”라고 말하고는 기지개를 켰다. 이상하게 몸이 찌뿌둥한 것이, 아무래도 오늘은 걸어 가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몸을 좀 풀고 싶어서였다.

 

그럼 다녀오세요.”

 

, 그래. 이런 인사 받으니까 되게 이상하잖아. 다음부턴 하지 말라고.”

 

몸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는 청등의 집으로 향했다. 아무리 몸을 비비 꼬며 걷고 발을 털며 걸어도 몸이 풀리지 않았다. 옷자락은 빗물이 튀어 젖어 무거워졌다. 옆구리에는 아까 낮에 아라시가 주고 갔던 부채 역시 젖은 채로 잘 꽂혀있다.

 

청등의 집이 보일 무렵, 누군가가 세나 이즈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는 날씬하게 뻗은 몸이며 감싸고 있는 고급스러운 비단 때문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아라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어쩐지 걸음이 빨라졌고,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물을 튀기면서 걷는 것에 거부감마저 있던 이즈미는 자신도 모르게 뛰고 있었다.

 

뛰어오지 않아도 괜찮아.”

 

언제부터 기다렸는데?”

 

아까 이거를 줬을 때부터, 라고 해야 하는 걸까나?”

 

나루카미 아라시는 세나 이즈미의 옆구리에 잘 끼워져 있는, 이미 젖어버린 부채를 살살 펴서 얼굴을 가리고는 뒤를 돌았다. 두 사람은 별 말 없이 늘 가는, 처음 만났던, 그 방으로 들어갔다.

 

비가 거세게 내리고, 밖과 안은 완전히 차단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게 했다. 나루카미 아라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술잔을 들여왔다. 이번에 새로 들여온 것이라며, 투명한 잔을 내보였다. 투명한 푸른빛을 띤 것이, 처음 보는 것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 방을 가득 채운 푸른 등을 다 담은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이날도 역시 아라시가 자신의 잔에만 술을 채웠다. 이즈미는 그것을 보고 있다가, 결국 물었다.

 

왜 권하지는 않는 거지?”

 

마시고 싶은 걸까? 한량보다는 숙맥인 것 같은데.”

 

하아?”

 

아니니?”

 

그러는 그 쪽은? 자기 술잔만 채울 줄 아는데, 그래서 소임을 잘 했겠어?”

 

그런 착각은 해로운 걸. 이름도 모르는 사람의 과거를 넘겨짚는 건, 나쁜 버릇이란다?”

 

아라시는 거슬릴 정도로 부채를 접었다 폈다. 그리고는 그것을 옆에 두고는 잔을 하나 더 채웠다. 그리고 세나 이즈미에게 권했다.

 

들래?”

 

그래.”

 

딱히 술을 입에 대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비도 내리니, 아무도 이 술상을 확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고집스러운 것은, 바깥과 차단된 이곳이 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조금 말을 더해보자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바깥에서는 모를 것이 확실해서이기도 했다.

 

이즈미는 한 번에 술잔을 비웠다. 애초에 썩 좋아하는 맛이며 향이 아니어서, 꼭 필요한 때면 이렇게 한 번에 쓴 맛을 해치워버리는 편이었다. 그에 비해 아라시는 술잔을 반 정도만 비우고는 손에서 술잔을 내리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이즈미를 보고 웃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이전에 했던 일종의 약속에 대해서 먼저 말을 꺼냈다.

 

오늘은 찾아온 이유를 말해주지 않을 거니? 오늘도, 이지만?”

 

글쎄. 아직 잘 모르는 사람한테는 굳이 내 용건부터 하고 싶진 않아서. 그쪽도 영 찝찝하고?”

 

어머? 내가?”

 

아라시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화려한 표정 속에서 웃는 모습이, 한두 번 사람을 넘겨본 솜씨는 아니었다. 이즈미는 괜히 분한 마음이 들었다.

 

어라? 우리가 무슨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렇게 분한 표정을 지으면 못쓴단다? 그러면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잖니.”

 

그는 술상을 옆으로 밀어내고, 여전히 손에는 투명한 푸른 잔을 들고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이즈미에게 다가왔다. 그동안 잘 마시는 것 같아 몰랐는데, 깊게 내쉬는 숨에서 취한 향이 짙게 올라와 닿았다.

 

취한 거 같은데.”

 

그러면?”

 

아라시는 이즈미의 다리를 단정하게 잘 감싸고 있어야 할 것임에도, 비에 젖어 무거워져서는 모양이 조금 흐트러진 것의 아래로 손을 넣었다. 이즈미는 술이 올라 몸 역시 제법 열이 오른 아라시의 손과 그의 손에 끼워져있음에도 여전히 찬 그의 반지가 동시에 몸에 닿는 것을 느꼈다.

 

하아?”

 

예상하고 온 거 아니었니?”

 

이즈미는 그 자리에서 바로 부정할 수 없었다. 점심이 지나고 해가 완전히 지는 것을 볼 때까지, 그는 아라시가 자신에게 남기고 간 부채를 접었다 폈다 하며 낯부끄러운 상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려고 남기고 간 거, 아니었어?”

 

알아차리면 다행일 거라고 생각했단다.”

 

매번 이런 식?”

 

어머, 매번이라니. 서운한 걸.”

 

아라시는 몸을 뒤로 뺐다. 그 잠깐 사이에 제법 취기가 돌기 시작했는지, 술이 찰랑거리다 못해 결국 몇 방울 떨어졌다. 이즈미는 아라시의 그런 모습을 보고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동안은 잠깐 술상을 권하고 이즈미가 그 자리를 짧은 시간 함께 지키다가 곧 자리를 떴기에, 몰랐던 사실이었다.

 

딱히 취한 사람 데리고 어쩔 생각은 없거든. 주제에, 나한테 잔뜩 기어올라 벌을 준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는 별로.”

 

이즈미는 일어나려고 바닥을 짚었다. 하지만 쉽게 일어설 수 없었다. 아무래도 아라시가 다녀간 이후로 괜히 신경 쓰여 속이 불편해 속을 비운데다가, 바로 술이 들어간 탓 같았다.

 

아오, .”

 

그는 짜증을 내며 다른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최악의 모양새였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는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양 손으로 바닥을 짚어 볼썽사나워졌다. 일어나려고 힘을 주려는 찰나에,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짙은 술 냄새가 가볍게 닿아서는 가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라시는 왼손에 술잔을 찰랑거리며 이즈미에게 갖다 댄 입술로 그의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놓았다. 아프지는 않았고, 불쾌하다면 향 정도가 불쾌했다. 그 잠깐 사이에 이즈미는 제 몸에도 제법 술기운이 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언뜻 드는 정신으로 바깥을 보니, 여전히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 * *

 

 

아주 약한 빗방울에도 묻힐 정도로 작은 콧소리가 이즈미의 귀를 간질였다. 이즈미는 생경한 느낌에도 자신이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그의 기준에서는 서툴거나 어색하지 않은 것이었다.

 

장난처럼 시작한 아라시의 손은 이즈미의 다리 안쪽으로 깊숙하게 닿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이즈미의 입술에 여전히 붙이고 있는 입으로는 차마 나오지 못하는 소리가 콧소리로 나고 있었다.

 

이즈미는 제 속을 헤집으려고 작정한 듯한 아라시의 손을 잡았다.

 

뭐하자는 건데?”

 

아라시는 그에게 대고 떼지 않았던 입술을 떼고는 이즈미의 어깨에 턱을 기대고 말했다.

 

부채가 많이 닳았던데, 이유는 본인이 더 잘 알고 있는 거 아니니?”

 

자꾸 밟지 말지? .”

 

어머, 이런 곳에서 선을 지키길 바란 거니? 바랄 게 있어서 온 입장에서, 선까지 바라면 너무 많은 걸 원하는 거일지도.”

 

이즈미는 술기운이 돌고 있음에도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신도 못하는 이 사람과 무엇을 하고 말고의 상황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없는 정신에 자존심을 운운하고 있는데, 아라시의 찬 반지가 이즈미의 중심을 스쳤다. 이즈미는 뜨거운 살과 찬 반지가 번갈아 닿는 탓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고 싶지 않은 데도, 너무 다른 온도에 살은 평소보다도 더욱 긴장을 했다.

 

비단 피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몸이 더 뻐근해지는 것이, 아무래도 한창 때의 소년이 밤이면 이따금 깨는 이유와 유사한 문제가 벌어질 것만 같았다. 적어도 충동의 정도로 한다면, 느닷없이 찾아오는 몽정의 상태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아라시의 손이 그의 것을 차게, 혹은 뜨겁게 했다가 다리 사이를 가로지르는 기분에 결국 몸을 앞으로 세게 기울여 그것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 탓에 아라시의 손에 들려있던 술잔은 완전히 바닥으로 쏟아졌고, 굴러가던 술잔은 결국 자개에 닿아 깨졌다. 남은 이즈미의 술잔만이 방 어딘가를 구르고 있었다. 빗소리가 아무리 커도,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즈미는 그쪽으로 시선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썩 내키지 않았는지, 아라시는 거의 눕다시피 한 상태로 팔을 벌려 이즈미의 목에 감쌌다. 아까보다도 더 뜨거운 것이 목을 감싸자, 취기가 더해지는 것 같았다. 이즈미는 아래를 보았다.

 

이즈미의 속을 헤집으려고 하면서 어떻게든 참던 그 달뜬 숨이 이제 한계를 보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몇 명이나 이렇게 대한 건데? 이즈미는 너무도 쉽게 방어 상태를 버리고 풀렸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내비치려는 아라시를 보며 묻고 싶었다. 딱히 그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라 참을 뿐이었다.

 

이즈미는 이따금 꿈에서 정체 모를 누군가와 하던 대로, 아라시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아라시의 다리가 그의 허리로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가볍게 숨을 불어넣었다. 힘을 주고 이즈미를 더 아래로 잡아당기는 탓에, 이즈미는 그것을 버티려고 무릎을 꿇고 더 힘을 줬다.

 

, 잠깐.”

 

으응?”

 

아라시는 이즈미를 보고 정말 잔망스럽게도 웃었다.(적어도 그 상황에서의 이즈미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이 얄미워 입을 맞췄다. 이즈미는 그때 아라시가 입만 맞추면 눈을 감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얼핏 보더라도 경험이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여러 명, 아니었나?”

 

,.”

 

아라시는 허리에 힘을 조금 주고 고개를 들어 이즈미에게 입을 맞추었다. 이즈미는 그런 아라시의 목에 저의 손을 갖다 대었다. 뜨거운 손이 이미 뜨거워진 목덜미를 받치자니, 열이 더해졌다. 그는 아라시를 조심스럽게 눕히고는 입을 맞추었다.

 

언젠가 들은 적이 있다면, 최대한 천천히. 그것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이 사람에게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순서였겠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이즈미가 입술을 갖다 대자, 아라시의 입은 그의 다리만큼이나 쉽게 벌어졌다. 제법 벼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즈미는 그 속을 천천히 훑기 시작했다. 서투니, 성급하게 했다가는 양쪽 다 손해였다. 난생 처음 경험하는 낯선 느낌에, 그런 각오며 다짐이 언제까지 갈 지는 모르겠지만 최대한 끌어보기로 했다.

 

그는 치열부터 훑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코로 겨우 내던 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이즈미가 충동을 참지 못해 아라시에게 제 호흡을 불어넣을 때마다 호흡이 흐트러지는 탓에, 아라시는 여러 가지가 섞인 신음을 제대로 낼 수 없었다.

 

그렇게 입만 맞추다 말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라시가 감고 있던 다리와 저의 허리에 힘을 주어 몸을 들어올렸다. 이즈미가 받치고 있어 가능한 것이었을 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여름이라 얇은 비단으로 몸을 감고 있던 이즈미의 아랫배에 뜨거운 것이 닿았다.

 

이 정체 모를 사람이 적어도 남자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자, 이즈미는 혀를 더 깊숙한 곳으로 넣었다. 경험상 무엇이든 목구멍 깊숙한 곳을 건드리면 구역질이 나온 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괘씸한 마음에, 이즈미는 혀를 깊게 넣었다.

 

하지만 그것을 감아 오는 부드러운 것에, 결국 그는 아라시의 호흡에 맞추어줄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숨이 차 가슴이 오르내리는 만큼이나 아라시는 감고 있던 다리며 허리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 몇 번을 하고 나니, 아라시가 단정하게 감고 있던 옷은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졌다. 일전에 아라시가 이즈미의 것을 흐트러뜨리던 것과는 정도가 달랐다.

 

이즈미는 바닥에 쏟아진 술잔에 저의 손가락을 적셨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입술을 떼어냈다. 숨을 정신없이 몰아쉬는 아라시의 입에 저의 손가락을 넣었다. 사춘기 소년이 하던 그대로였다.

 

헛구역질은 죽어도 싫은지, 아라시의 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목을 꽉 막고 있었다. 이즈미는 자신의 혀 대신 손가락으로 그의 입 속을 구석구석 훑었다. 술이 닿은 손가락이라 그런지, 아라시는 자연스레 이즈미의 손가락을 빨았다. 세게 혹은 약하게, 끝만 그러다가 깊게 넣어주기까지 했다. 그렇게 혀가 이즈미의 손가락 마디마디를, 그리고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를 수차례 적셨다.

 

손가락이 들어가 침을 삼키지 못한 탓에, 결국 그의 타액이 입안을 가득 채우고도 흐를 지경이 되었다. 아라시는 이즈미의 손가락을 빼고 싶었는지 고개를 돌렸다. 타액이 입술을 타고 흐르는 것을 본 이즈미는, 아라시의 고개를 똑바로 들어세웠다. 그리고 어긋나게 입을 맞추어 그것을 혀로 핥았다.

 

, 깐만. , 힘 좀.”

 

, .”

 

아라시는 일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리와 허리에 힘을 주어 몸을 들어올렸다. 이즈미는 이미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져서 아래를 훤히 드러내고 있는 아라시의 허벅지부터 손으로 쓸었다. 그리고 잘 잡힌 라인을 따라 내려갔다.

 

열이 오른 다리와 달리, 찬 바닥에 닿은 엉덩이를 주물렀다. 최대한 가볍게 한다는 것이, 서로 술이 오른 탓에 조절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

 

조금 더 길어진 소리에, 이즈미가 아라시의 엉덩이를 주무르던 손을 떼었다. 다리가 더 세게 감아오고, 아라시의 것이 이즈미의 아랫배 부근의 옷을 적시기 시작했다. 이즈미는 허리부터 간질어져 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종일 느끼던 뻐근함이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그제야 종일 찌뿌둥했던 이유를 알아내 황당한 탓에 소리를 내어 웃었다.

 

하아. 말도 안, 된다고.”

 

왜에?”

 

아라시는 이즈미의 콧등에 입술을 갖다 대고는 혀끝으로 그의 콧날을 가볍게 쓸었다. 이즈미는 웃는 것으로 겨우 숨을 내뱉으며 아라시의 엉덩이 안쪽을 헤집으려고 들어갔다. 손가락을 제법 적셨음에도, 이즈미의 손이 닿자 불편한 느낌이 들었는지 아라시는 허리를 틀었다.

 

……, 설마, 처음?”

 

이즈미는 아라시에게 물었다. 아마 아라시가 아니라 다른 이를 밑에 두고 있었다면, 묻지 않았을 것이다. 당황스러움과, 묘한 쾌감이 더해져 다시 물었다.

 

처음, 이냐고.”

 

, ……으읏.”

 

이즈미는 그 여세를 몰아 아라시의 아래에 바로 검지를 하나 넣었다. 아라시처럼 반지라도 끼고 있었다면, 더 아래를 괴롭혀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조금 아쉽기까지 했다. 이즈미의 손가락이 입구를 건드리기만 했음에도 숨을 고르지 못하던 아라시는, 이즈미의 손가락이 닿았다 문지르고 들어가는 순간의 고통을 삼키는 것 같았다.

 

 

정말 천천히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부드럽게 혹은 공을 들여 정성스럽게 하기에는 순서가 잘못되었다.

 

이게, ……말이야. 먼저, 아래부터 건드……, , 이라고…….”

 

이즈미는 자신의 아래를 뭉근하게 누르는 아라시의 것을 달래주는 대신, 저의 것으로 손을 내렸다. 아직 손가락이 두 개 정도만 겨우 들어갈 정도로 풀려있었지만, 자꾸 아랫배를 자극하는, 뱉을 것을 뱉어내기 시작한 아라시의 성기가 짧은 애무로 부푼 이즈미의 것을 더욱 성나게 했다.

 

아라시의 구멍을 쉽게 찾기 위해서 엉덩이를 주무르며 길을 트고 있던 한 손을 내려 저의 것을 달래자, 아라시가 저의 것으로 이즈미의 아랫배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짜증나게, 잠깐, 흐읏, 기다리라고. 보채지 좀……말고.”

 

제 옷은 흐트러뜨리지도 않고 잘 걷자, 아라시가 이즈미의 목을 잡고 있던 팔을 풀었다. 손을 내리자, 바닥에 쓰러져 흐르는 술이 손에 닿았다. 그 때문에 손을 바닥에 고정하기가 힘들었다. 이즈미는 그런 아라시의 사정은 봐줄 여유가 없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아라시가 감고 있는 다리를 풀었다. 아라시는 그나마 발로 바닥을 고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발끝에 힘을 줬다.

 

하지만 그것이 썩 내키지 않았는지, 이즈미는 아라시의 오금을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아라시를 젖혔다.

 

, 흐윽, , 잠깐, 깐만……!”

 

허공으로 몸이 들리는 것 같은 느낌에, 두려웠는지 아라시는 아무 소용도 없는 팔이며 발을 흔들었다. 이즈미는 그런 아라시의 움직임이 거추장스러웠는지 제 것을 조금이라도 달랠 틈도 없이 그대로 구멍을 가르기 위해 갖다 대었다.

 

금방이라도 가를 것 같은 것이 아라시의 아래를 끊임없이 자극만 할 뿐이었다. 잇새를 가르고 골라 나올 것 같던 신음이 숨이 차 쉴 새 없이 오르내리던 가슴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아라시의 신음이 터질 즈음이 되어서야, 이즈미는 제 것으로 아라시의 것을 가로질렀다.

 

, ……으윽.”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경험이 많다면 금방이라도 풀려 쉽게 들어갔어야 하는 것이, 그러지 못한 순간 말이다. 이즈미는 제 것을 어떻게든 삼키려고 하면서도 쉽게는 하지 못해 금방이라도 토해내고 싶어 하는 아라시의 아래에 조금씩 더 집어넣었다. 끝까지 꽉 찼다는 느낌이 들고, 그제야 조금씩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 으읏……, ……, 흐윽…….”

 

여전히 고통어린 신음을 참지 못하는 아라시를 달래기 위해 이즈미는 천천히 숫자를 세었다.

 

, , 세엣.”

 

그는 숫자를 아홉까지 세면서 저의 것도 천천히 숫자를 그리게 했다. 위아래도 쳐올리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몇 번을 했지만, 처음이라 꽉 물고 놓아주지 않는 아라시의 등이 대신 바닥에 쓸리는 것을 본 탓이었다.

 

, ……, .”

 

일곱이 되고, 고통어린 아라시의 호흡이 바뀌어갈 무렵, 이즈미는 빠르게 여덟, …….”하고 마지막 숫자를 세었다. 아홉을 셀 무렵, 아라시의 한 다리는 저의 어깨에 올리고 남은 손으로 아라시의 것도 숫자를 그리게 했다. 그렇게 아홉까지 숫자를 세 번은 세고 나서야, 이즈미는 참았던 것을 뱉어낼 수 있었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질척한 소리도 내지 못할 정도로 급하게 들어찼던 것을 빼내자, 그제야 흐르는 것에 살갗이 맞닿으며 노골적인 소리를 냈다. 이즈미는 아래만 벗겨진 아라시의 것으로 그의 속을 받아 내주었다.

 

, .”

 

아라시는 고르고 골라서 떼온 비단으로 이즈미가 아라시 저의 속에 있는 것을 받아내는 것을 보고는 눈을 감아버렸다. 여러 생각이 낳은 부끄러움 같은 것이었다. 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즈미가 쳐올리며 숫자를 그린 탓에 취기도 가셨다.

 

이즈미는 아라시를 세워서 다리를 벌리게 했다. 벌어진 무릎 아래에 비단을 갖다 대고 저의 흔적을 받아내다가 아라시의 엉덩이를 쳤다.

 

, 이즈미쨩……!”

 

생전 처음 듣는 호칭에, 이즈미는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뭐라고?”

 

, 그러니까! 치지 말래도…….”

 

아아, 그렇겠지. 잘도 그런 척을 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던 이즈미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즈미는 눈앞에서 거슬리는 파란빛을 띠고 있는, 남은 유리 술잔을 들어 비단의 곳곳에 여전히 남아있는 것을 긁어모았다. 백탁액의 것을 담아, 술병에 조금 남아있는 술을 따르고는 잘 흔들어서 청등에 비춰 봤다.

 

탁한 푸른색이, 어느새 비가 서서히 그치기 시작하고 해가 어스름하게 떠오르는 바깥과 색이 제법 잘 어울렸다.

 




***

 

 


 

지독하게도 불지 않던 여름 바람은, 아침이 되어서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해가 다시 지고, 아라시가 청등을 밝히기 위해 그가 머무는 자리에서 나와 마당을 거닐기 시작하자 정말 우습게도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즈미는 아라시와 밤을 지새운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문을 조금 열고, 그 사이로 바람을 느끼며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나 싶었다. 하지만 아라시는 그런 이즈미의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로, 문을 크게 열었고, 이즈미의 앞에 섰다.

 

이즈미는 엎드려 위를 올려다봤다. 후덥지근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아라시는 얇은 비단으로 된 옷 대신 불투명하고 빳빳한 것을 걸쳤다. 그것이 내심 서운했던 이즈미는 아라시의 발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간밤의 흔적이 발목에도 남아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이즈미는 할 일을 다 했는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입가가 분명한 곡선을 그리며 환하게 웃었다.

 

철없는 도련님이 따로 없네?”

 

그 웃음을 본 아라시는 이즈미의 미소가 신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전까지만 해도 이곳 이즈미는 청등의 집이라고 부르는, 제일의 유곽 에 오는 것을 질색했던 것은 진작 알고 있던 데다가, 어제 그렇게 잠자리를 갖고도 이렇게 웃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라시는 이즈미의 다리에 끼워놓고 나왔던 것보다 색이 더 화려한 부채를 큰 소리가 나게 접어서, 이즈미의 턱 아래를 살살 쳐댔다. 이즈미는 그 부채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라시는 곧 죽어도 직접 말하는 법이 없으리란 것을 바로 어제 알았다. 적어도 이즈미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학습 능력이 좋은 것 같았다.

 

턱 끝을 두드리는 부채를 잡아 내리고, 통이 넓어 손이 들어가고도 남을 아라시의 소매에 제 손을 집어넣었다. 손을 잡았다가 놓았다가 팔을 잡고 손바닥으로 정성을 다해 쓸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쉽게 움직여줄 것 같았던 아라시는 그러지 않았다.

 

안 돼, 이즈미쨩.”

 

아라시는 이즈미의 뒷머리를 잡아 제 쪽으로 끌어와서는 귀에 대고 속삭이듯 말하며 거절했다.

 

?”

 

이즈미는 그런 아라시의 태도와 상반되는 답이 싫었다. 괜히 심술이 나서, 아라시를 잡고 있던 손을 내려 아래로 가져갔다.

 

오늘 중요한 손님이 오신단 말이야. 이즈미쨩이 간밤에 너무 괴롭혀서, 옷도 제대로 못 갖춰 입었구.”

 

투정부리듯 이즈미에게 툴툴 거리는 아라시가 옷을 더 단정하게 정리했다. 이즈미는 그제야 아라시가 평소보다도 더 두껍고 빳빳한 옷을 입고 있는 이유를 알았다.

 

얼마나 걸리는데?”

 

모르겠어. 가봐야 알 것 같고. 꽤 큰 건이라.”

 

아아. 이즈미는 아라시가 제법 큰 상단의 주인이라는 것도 잠시 잊고 있었다. 이렇게 큰 유곽을 운영하며 상단주인 덕분에 이즈미가 이곳에 드나들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오히려 청렴하겠노라도 자신만만했던 이즈미에게 조금의 인간미는 만들어주는 결정적인 이유였기에 이즈미는 거절할 수 없었다.

 

잠은 여기에서 자.”

 

노력해볼게.”

 

?”

 

내내 시중 들어야할 수도 있고…….”

 

아라시의 말에 이즈미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어린 여자 아이를 한 명 붙잡았다.

 

뭐하는 거니?”

 

, 들여보내면 되잖아.”

 

안 돼.”

 

?”

 

그의 입장에서는 딱 잘라서 말하는 아라시가 답답했다. 이즈미는 아라시가 답을 해주지 않겠다고 할수록 아이의 손목을 세게 잡았다. 고통에 신음을 내는 아이를 보고, 아라시는 이즈미의 손등을 부채로 쳤다.

 

억지는 안 돼. 어린 아이한테 그런 자리를 책임지라고 할 수는 없잖니? 그리고 엄연히 일이야. 방해하면 못써.”

 

아이를 타이르듯 말하면서도,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아라시는 한숨을 쉬고, 이런 이야기를 해줘야만 하는 이즈미 때문에 짜증도 났다.

 

하지만 그 짜증도 잠시였다. 금방 알겠다고 수긍하는 이즈미를 보니,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그가 얼마나 심심하게 살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저의 말 한마디에 풀이 죽은 모습을 보이자, 아라시는 별로 갖고 싶지도 않았던 연민의 감정이 생겨난 듯 했다.

 

알았어. 대신, 기다리지말아줘.”

 

말까지 하면서 부채를 접어, 이즈미의 유카타에 잘 끼워주었다. 아라시가 이즈미에게 할 수 있는 다짐이자, 하고 싶은 말이었다. 그는 이왕 재미를 봤다면, 이즈미에게 끝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지만, 그러다 마음까지 동하면 이즈미 정도야 눌러 앉힐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이기도 했다.

 

부채와 아라시를 번갈아 멍하니 보던 이즈미는 등을 돌려 밖으로 나가는 아라시를 붙잡기 위해 팔을 뻗었다. 그것을 저지하려는 것이었는지, 부채가 화려하게 떨어져 요란한 소리를 냈다.

 

 

 

* * *

 

 

 

지루하게 사는 것은 심심한 삶에 익숙하고, 그런 것을 자랑삼아 했던 세나 이즈미의 취미이자 자랑이었다. 하지만 나루카미 아라시를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것이 없는 세나 이즈미는 그 지루함이 지겨워서 싫었다. 차라리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면 덜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온갖 생각을 쳐내기에 힘이 들었다. 이따금 누군가 그 실의 문을 열고 들어갈 때면 왜 들어가는가 보고, 안에서 조금이라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그 앞을 지나는 어린 아이들을 붙잡고 묻기에 바빴다.

 

상상은 체력 소모를 요했고, 이즈미는 결국 제 풀에 지쳐 먼저 잠이 들었다.

 

새벽, 그의 잠을 계속 재우기 위해서 바람은 계절과 어울리지 않게 산들산들 불었다. 이즈미는 그 바람이 좋은지 문 앞에 코를 갖다 댈 듯이 가까이 찾아가서는 잠을 청했다.

 

그런 그가 깨지 않게 겨우 문을 열고 들어온 아라시는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품에 잘 접은 부채를 가지고 있는 이즈미에게 입을 맞추었다. 짧고 잦게 맞추는 것 대신, 깊고 진하게 하는 쪽을 선택했다. 아라시는 술에 찌들어 향이 시큰하게까지 묻어나는 한 손으로 이즈미의 볼을 잡았다. 그리고 그것을 힘을 주자, 이즈미의 입이 벌어졌다. 아라시는 앉아 허리를 숙이고 그 사이로 제 혀를 넣었다. 그간 정신력으로 버텼던 취기는, 굳게 닫고 있던 이즈미의 열기와 섞이면서 더 빨리 올랐다. 아라시는 더 노골적으로 놀렸다. 혀로 이즈미의 벌어진 입술 선을 따라 그리는가 하면, 듣기 민망할 정도로 큰 소리를 내며 쪽쪽거리기도 했다. 타액끼리 섞여 내는, 보통 같으면 기분 나쁠 소리에 점점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 아라시는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이즈미는 잠결에도 아라시를 찾았다. 잠투정에 섞인 은근한 신음소리를 주저하지 않고 내뱉으면서 아라시의 목에 팔을 감았다. 그리고 잡아당겼다. 술기운에 지탱하지 못한 이즈미는 아라시 위로 쓰러지듯 몸을 겹쳤다.

 

이즈미쨩, 불편해.”

 

이즈미가 말을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아라시는 평소 잘 하지도 않았던 투정을 하며, 이즈미의 위에 몸을 겹쳐 누워서는 앞머리를 넘겼다. 동그랗고 반듯하게 생긴 이마가 눈에 들어왔다. 귀하신 도련님께서 어쩌다 이런 곳에 오셨을까. 쭈뼛거리며 겨우 들어오던 이즈미가 생각나, 웃었다. 그러다 지난밤에 당했던 것을 고스란히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이즈미의 곳곳에 입을 맞췄다. 흰 피부에 아라시의 입술 자국이 작고 진하게 남았다. 아라시의 발목에 난 것과 비슷한 붉은 반점들이 이즈미의 목덜미며 곳곳에 남았다.

 

이즈미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 낮게 웃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웃긴데?”라고 말하는 이즈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라시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바닥을 짚었지만, 진작 잠이 깬 이즈미는 아라시의 어깨를 잡아 안아서는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늦었네.”

 

자는 줄 알아서, 천천히 왔는데…….”

 

기다리는 거, 몰랐다고 하진 않을 거고?”

 

어제도 했고, 너무 무리야. 이즈미쨩.”

 

이즈미는 가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다가는 해서는 안 될 말까지 나올까 걱정이 됐다. 그래서 그 말 대신, 아라시에게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수고했어.”라고 말해주고 말았다.

 

아라시는 그때까지만 해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즈미는 아라시에게 몇 번이고 입 안 깊숙한 곳까지 탐하기만 할 뿐,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아라시는 제 옷이 잘못되었나 생각했다. 어제와 확실히 다른 옷이기는 했으니 말이다.

 

불편하니?”

 

별로.”

 

이즈미는 아라시가 한 마디 할 때마다 입을 맞추고, 그의 움직임에 응했지만 곧 그것을 멈추고 아라시를 안고 눕는 것 말고는 하지 않았다. 재잘거리는 시장의 여자아이처럼, 아라시는 내내 이즈미를 불러서 말을 했다. 아까 전에는 어떤 손님이었다, 그가 제 손 위에 술을 쏟았다, 누가 있냐고 해서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등. 이즈미를 자극할 만한 이야기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이즈미는 그것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였다.

 

재미없니?”

 

이건 재미없네.”

 

아라시의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그러다 이즈미는 몸을 일으켜 아라시의 위에 자리를 잡았다.

 

이건 생각 좀 해보고. 말 못할 취향인 것 같아도, 비밀이고?”

 

 

 

* * *

 

 

 

이즈미는 아라시의 위에 앉아 허리를 숙이고 다시 입을 맞췄다. 아라시의 손이 이즈미를 찾아 다녀야 했지만, 이즈미는 술에 취하고 기운이 빠진 아라시의 손목을 잡고 그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혀로 입가를 건드리다가 괴롭히려고 작정한 듯 숨을 다 들이마시고 입에 도로 뱉어주기를 반복했다. 아라시는 기침이 나다가 딸꾹질이 나기도 했다. 그 정도가 심해서 눈물이 조금 날 정도였다.

 

, , , …….”

 

겨우 숨을 돌리는 아라시와 코끝을 맞추며 이즈미가 물었다.

 

이랬어?”

 

……, ?”

 

아라시는 적어도 이 순간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었다. 이즈미는 그래? 라고 되묻고는 다시 입을 맞추었다. 하지만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다. 지난 밤, 그렇게 제 움직임 하나하나에 동요하고 휘둘렸던 이즈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결국 이즈미는 제 기운을 이기지 못해 찡그렸다. 아무래도 아래가 뻐근해져오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체감 상, 시간이 꽤 많이 흘렀으니 말이다.

 

이즈미는 몸을 점점 낮추고, 아라시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아라시의 허리를 감고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풀었다. 아라시는 그럴 때마다, 어때? 하고 묻는 이즈미가 얄미웠다.

 

좋아, 싫어, 모르겠어, 를 적당히 조절해나가는 아라시의 화법 기술은 꽤 좋았다. 이즈미는 아라시의 대답에 기분이 좋아 손을 빨리 놀리는가 하면, 또 그의 담이 싫어서 이기려는 듯이 달려들었다. 아라시가 이즈미에게 매달려 완전히 몸을 대었을 때, 두 사람은 온전히 살과 살이 닿을 수 있었다.

 

공평하네, 우리?”

 

이즈미는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면서 아라시에게 입을 맞추고 말았다. 두 번째였다. 이즈미는 무엇을 확인하고 싶은 것인지, 아라시의 몸 구석구석을 손으로 훑었다. 그럴 때마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발끝까지 힘을 주고 참는 아라시 때문에, 이즈미는 애가 탔다.

 

결국 아무런 준비도 없이 손을 아라시의 골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거기에 손가락 네 개씩을 넣어 틈을 벌렸다. 이미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이즈미의 성기가 그 골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 , 이즈미쨩…….”

 

하아, .”

 

이즈미는 그 사이에서 제 것으로 아라시의 골 주변을 쓸었다. 미끈한 것이 나와 그 골 주변을 적셨다. 아라시는 제 아래도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온갖 자극에도 별 반응이 없던 것이, 확실히 이즈미에게 닿으면 수치스러울 정도로 민감하게 섰다.

 

이즈미는 그렇게 댈 듯 말 듯한 상태로 아라시를 괴롭혔다. 아라시의 몸이 제대로 반응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무릎을 꿇고 아라시를 안아서는 제 허벅다리에 앉혔다. 다리가 벌어지고, 아라시의 아래가 이즈미에게 완전히 밀착되었다. 그것이 이즈미의 배꼽 주변을 뭉개자, 이즈미는 아라시를 안은 채로 낮게 신음을 내뱉었다.

 

그는 아라시의 아래를 적신 제 것을 대충 집히는 대로 잡아 닦아주었다. 엉망으로 만들고 시작하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아라시의 몸을 감싸고 있던 빳빳한 천은 제 주인의 아래를 정리해주었다. 이즈미는 그대로 아라시를 둘려 눕히고, 팔목을 잡았다.

 

그대로 바로 시작되었다. 이즈미는 꼭 취한 사람처럼 막무가내였다. 제대로 풀어주지도 않고 시작하는 것이 억지스러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라시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직 경험이 없어 끝을 제대로 맞추지 못해 어긋나는 이즈미의 입에서는, 이따금 욕설이 나왔고, 그런 것을 들을 때면 이즈미의 초조함이 느껴져서였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들어와, 이곳의 붉은 등을 청등으로 갈 위치가 될 때까지 아라시는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이런 연민의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연민의 마음은 순전히 애정에서 오는 것이라고 믿어서였다. 아라시는 이즈미의 아래에 있다가 허리를 들었다. 속에 찬 것이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조금 자세를 바꾸자, 이즈미가 아라시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한 손에 들어오는 엉덩이를 잡고 그대로 더 깊숙하게 박았다. 허리를 잡아주지 않아 몸이 미끄러져 바닥에 깔린 천에 쓸렸다. , 하고 짧은 신음이 터져야 했지만, 고통으로 인한 신음을 대신해 쾌감으로 무거워진 목소리만이 흘렀따.

 

계속해서 생각보다도 더 깊숙한 곳을 한 번에 찌르자, 헉하는 소리가 절로 났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절정에 올랐는지 이즈미는 연식 헉헉대며 호흡 고르기에 바빴다.

 

아라시 역시 경험이 없던 탓에, 이즈미가 움직일 때마다 세게 조여 한편으로는 그를 힘들게 했지만, 그 나름대로도 힘이 들었다. 이질적인 것이 제 아래를 관통해 들어오는 느낌이 아직도 고통과 쾌락을 얄밉게 저울질 하고 있어서였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자신 있게 이즈미의 위에서 놀던 아라시는, 한 순간에 이즈미의 모습을 보고 완전히 받아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는 이즈미가 원하는 대로 하기 위해서 앞서나가지 않았다. 재촉하고 불안해하는 이즈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을 대신해서였다. 그래서인지 이즈미는 아라시를 건드는 손길 하나에, 행동 하나까지 모두 신경 썼다. 아라시를 옆으로 눕혀 한쪽 다리를 저한테 걸어놓고는, 틈을 더 벌리고 쉴 새 없이 박아대면서도, 그 다음을 위해 또 준비하고 고민하는 것 같았다. 결국 그것도 몇 번의 추삽질과, 보다 못한 아라시의 도발에 곧 끈이 풀어졌지만 말이다.

 

아라시도 점차 술기운이 가시는 것이 느껴졌다. 눈앞에 있는 이즈미는 가지런한 표정을 대신해 저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한 차례 사정을 위해 이즈미가 제 것을 천천히 빼내는 동안, 아라시는 제 다리를 내렸다. 그리고 팔을 벌렸다. 이즈미가 아라시에게 안기자, 아라시는 이즈미의 부풀어 단단해진 성기를 다리 사이에 끼웠다. 그리고 허벅지 힘으로 은근히 눌렀다.

 

………….”

 

이즈미는 아라시가 누르는 힘에 어쩔 수 없이 아라시의 다리 사이에 사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라시 역시 아까의 자극으로 이미 사정을 한 뒤끝이라, 작은 마찰에도 민감했고, 다리 사이에 붙들려 놀아나지 못하는 이즈미의 것이 주는 은근한 열기에 기분이 좋았다.

 

아라시는 이즈미에게 입을 맞추며, 다리를 벌리고,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내내 이즈미를 받아주던 아라시는 이즈미의 어깨를 눌러 눕히고는, 아래에 손을 갖다대었다.

 

이즈미쨩, 나 많이 좋아하지……?”

 

자신있게 물을 아라시는, “그러면 나만 해결해줄 수 있겠네?”라고 하더니 이즈미의 위에서 몸을 반대로 돌려, 창문쪽으로 시선이 닿도록 바꿨다.

 

창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이 열기를 이겨낼 수는 없던 모양이었다. 한차례 갔다가도 열기에 몸이 금세 달아오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라시는 이즈미에게 제 하반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도록 엎드려서는, 저는 이즈미의 아래를 괴롭혔다. 손으로 기둥을 잡고 천천히 흔들면서 혀로 선단을 건드렸다. 입에 그것을 넣고 제 혀와 입으로 이즈미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이즈미의 것을 손으로 놀리면서 제 입 안에서 굴렸다.

 

, , ……하아, ……. , 치겠……다고…….”

 

이즈미는 겨우 제 뜻을 밝혔지만,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 아라시를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결국 손을 올려 아라시의 엉덩이를 잡고 주무르는 것으로 적당히 했으니 얼른 끝을 보자는 신호를 보냈다. 이즈미는 제 아래를 끊임없이 건드리면서, 또 제 가슴팍에 떨어지는 아라시의 묽은 액을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무릎을 들었고, 아라시는 이즈미의 배 위에 앉았다.

 

이즈미는 그대로 아라시를 들었다. 아까 했던 것과 비슷하게 무릎을 꿇고, 그 위에 아라시를 맞춰 앉혔다. 아라시는 낮게 웃더니, 이즈미에게 반 정도 삽임된 채로 바닥을 짚었다. 아라시는 다리를 더 벌려 자세를 잡고, 이즈미의 것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등 뒤에서는 이즈미가 쉼 없이 신음을 뱉으며, 한 손으로라도 어떻게든 아라시를 건드려보겠다고 몸을 뒤틀고 있었다. 그 때마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 즈미, 안 돼. 정확히, 하겠, 잖아. 참아, …….”

 

저가 하면서도 마찬가지로 참기 어려웠던 아라시는 제 몸을 앞으로 숙였다 세우기를 반복했다. 가빠지는 호흡에, 이즈미는 점차 허리를 뒤로 넘겼다. 결국 한쪽은 팔꿈치로 바닥을 짚고, 아라시가 움직이는 대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즈미가 절정에 올라 머리를 더 뒤로 젖힐수록, 아라시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찌걱거리는 소리와 살갗이 닿는 소리, 그리고 간헐적으로 들리는 이즈미의 소리와 고개를 숙이면 발기해 서있는 제 아래가 한 번에 아라시를 괴롭히기에 충분했다. 아라시는 점점 속도를 올렸다. 넣었다 빼기만 해, 누르는 힘에 사정할 수 없었던 이즈미는 결국 아라시의 엉덩이를 쳐서 그를 제 위에 앉혔다. 그리고 손을 앞으로 가져가 서있는 아라시의 것을 잡고 위아래로 흔들어주었다. 손위로 따뜻한 것이 흐르고, 아래가 눌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느낌이 좋은 이즈미는 아라시의 귓바퀴에 혀끝을 갖다대었다.

 

귀가 유독 약한 아라시는 몸을 뒤틀었다, 아래가 아라시의 움직임에 눌리면서 결국 그 안에 사정해버렸다. 그렇게 끝났음에도 아라시와 이즈미 둘 다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어진 채로, 한참 있던 아라시는 고개를 뒤로 돌려 이즈미를 보았다. 흥분과 쾌감에 열이 오른 이즈미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있었다. 이러고 있으니까, 예쁜 도련님이네. 아라시는 이즈미를 보고 웃었다.

 

 

 

다시 아침이 밝았다. 아라시는 창문을 조금 열었다. 비린 꽃냄새가 실 안을 가득 채우고, 그것이 아무래도 배어버린 듯 했다. 비릿한 정액 향이 기분 나쁘면서도 좋았다. 간만에 제법 부는 바람에, 이즈미도 선잠에서 깬 모양이었다. 이즈미는 꼭 처음 바람을 마주한 것처럼 멍하니 서서는 밖을 보았다.

 

그런 그에게 나루카미 아라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즈미는 며칠 동안 있었던 일이 꿈만 같았다. 하지만 바람이 불고 있고, 이즈미의 머리를 헝클어놓았다. 바람이 불어서 현실임을 느끼는 자신이 새로웠다.

 

낯선 여기도 좋아졌어.” 이즈미는 아라시와 있던 분위기에 취해 말했다.

 

확신하니?” 아라시가 물었다. 이즈미는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 근데, 같이 있어서 좋은 거일지도 모르겠고.” 간밤에 자신을 보고 웃었던 아라시를 붙잡으려는 작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세상에 아라시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며 그렇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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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바람, 나비처럼

 

앙상블 스타즈! 유곽 AU 배포본

 

세나 이즈미 & 나루카미 아라시

 

 

 

글 코치사 (@chisemble_sta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