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애린님의 [이즈안즈 요괴 AU]의 번외편입니다.
시간상으로는 <각자의 경계선> 직전입니다.
울창한 나무 사이로 햇빛이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름인가보네. 이제 긴 꼬리는 더워서 거슬린다는 새삼스러운 말을 하며 금세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흰 꼬리의 잔상이 여전히 남아있는지 손으로 휘휘, 등 뒤를 마구 저었다.
"어머, 그렇게 뛰어다니면 이즈미쨩이 싫어할걸? 숲이 어지러워지는거, 싫어하는거 같으니까~."
아라시는 자신의 앞에 쪼르륵 줄을 선 여우들의 털을 가볍게 빗어주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며칠 전, 숲의 금지된 구역을 들어가는 '인간 여자 아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특별히 그의 여우들에게 부탁한 정보였다. 한창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이런저런 표정을 짓더니,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웃었다.
"그 아이말인데, 어떤 아이인지 알아와줄래? 오늘은 기다려야겠는걸~."
* * *
이런저런 사소한 호기심으로 부리기 시작한 여우들의 정보 수집 능력도 꽤 괜찮았다. 이즈미의 숲에 드나드는 '인간 여자 아이'에 대한 정보는 금방 모였다. 이름은 안즈, 어떤 성격이고 어느 곳에 소속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즈미가 그 아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까지 알 수 있었다.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었지만 오래 봐 온 만큼, 하나를 들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흐음, 곤란하게 됐는걸."
미세하게 더 올라간 입꼬리에는 호기심과 흥미가 고스란히 담겼다. 조금씩 더 분명하게 호를 그리는 것은 아마 끊이지 않고 드는 생각을 계속해서 따라 그려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라시는 작은 여우 한 마리에게 무어라 말했다. 짧고 간단한 지령이었다.
아라시가 부탁한 지령은 해가 지고 나서야 제대로 전달되었다. 짧은 지령은 츠카사에게 전해지는 것이었다. 지령을 받고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랐지만 알겠습니다, 라는 정중한 말과 함께 학교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건넸다.
고마워, 츠카사쨩. 아라시는 츠카사에게서 받은 종이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제 내일 해가 뜨기만 하면 되는데. 아라시는 이즈미가 있을, 더 깊은 숲과 사람들이 사는 곳을 번갈아 보고는 금방 인간의 모습을 한 채로 입구 가까이에 있는 숲을 빠져나갔다.
* * *
장마전선이 북상한다는 소식이 거리의 큰 스크린을 탔다. 이즈미쨩때문에 더 그렇잖아? 아라시는 선글라스를 쓰고 손부채질을 하면서 유유히 거리를 걸었다. 주변에는 자신을 모델로 한 포스터와 옷이 군데군데 붙어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는 똑같은 옷을 입고 있기도 했다.
"아직 내가 한물 가려면 멀었나보네~, 그치?"
아라시는 교차로의 중앙에서 허리를 뒤로 젖혔다. 선글라스가 세운 짙은 벽 너머로 더 짙은 구름이 하늘을 가렸다. 비가 올 모양인가, 아니면 어제 숲에 있어서 그런가? 더 덥고, 불쾌한걸 이거. 지나다니는 여자들이 쓰고 다닐 법한 화려한 양산을 펼치고는 다시 갈 길을 갔다.
아라시가 도착한 곳은 한 고등학교였다. 학교 이름이 적힌 판을 정문에서 한자씩 손으로 따라 그리면서 또 한번 확인하고 나서야 양산을 접었다.
"어머, 츠카사쨩!"
아라시는 한 손은 입가에 대고, 한 손은 높이 든 채로 그를 불렀다. 아, 오셨습니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몇 가지, 안즈에 대한 정보를 더 건넸다. 학년 반, 그리고 몇 가지 등하교 시간과 관련된 것이었다.
"나루카미 선배, 이런 것쯤은 직접 Collect하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미안미안, 츠카사쨩~. 그렇다고 위험을 감수하고 올 필요까지는 없으니까 이해해줘."
"그 모습 그대로 오시지 않아도, 충분히 Invisible하게 오실 수 있잖아요."
"오늘따라 까칠한걸? 그 안즈라는 아이, 츠카사쨩도 마음에 두고 있는거야?"
예? 하며 반걸음정도 떨어져 자신을 보고 있는 아라시를 몇번이고 훑어봤다. 제정신이고, 인간 여자 아이와 급작스럽게 묶어서 미안했다는 말과 함께 장난이라고도 했다. 하여튼, 장난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게 아직 멀었네. 아라시는 가벼운 키스를 공중에 뿌리는 시늉을 하고는 다시 사라졌다.
* * *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두워서 짙은 색을 띠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비가 오려는 건지 두꺼운 구름이 색을 입었다. 저녁이 되고 하나둘씩 내려오던 아이들이 어느새 떼를 지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선글라스를 벗고 몸을 숨긴 채 하교하는 학생들 틈으로 들어갔다.
'이런 능력을 이렇게 쓰고 싶지는 않았는데, 알려줄 생각은 절대 없을테니까 어쩔 수 없는걸?'
아라시는 츠카사에게서 받았던 사진을 한 번 더 보고 인파를 파고 들었다. 쏟아지는 학생들과 반대 방향으로 타고 올라가는 것이 생각보다도 더 재미있었다. 아직까지는 인간들 사이에서 살만 하겠어, 나도. 그렇지? 아라시는 마지막으로 타겟을 정하고 제 손을 털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는 하교하는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걷고 있는 안즈의 뒤에서 양산을 펼쳤다.
"더울텐데 우산은 가지고 왔니?"
"네?"
막 걸음을 뗀 한쪽 발은 땅에 붙이지도 못한 채로 올려다봤다. 사진보다 훨씬 귀엽네? 아라시는 안즈와 자신의 얼굴이 완전히 가려지게 조금 더 숙이고는 가까이 다가갔다.
"나는 여우씨, 아니면 아라시라고 소개할까? 이즈미쨩의 동료? 이름을 모르면, 요괴씨? 뱀씨라고 부르니? 아아, 너무 수다스러웠나?"
"어, ……."
"설마 안즈쨩, 내가 누군지 모르니?"
이즈미쨩도 센스가 죽은걸까? 안즈가 들고 있던 핸드폰을 거울삼아 제 얼굴을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빌린 핸드폰을 돌려줬다. 아라시를 뻔뻔하게 보고 있던 안즈는 아! 하는 간단하게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다행이네, 역시 여고생들도 이래서 귀엽다니까? 나는 여우씨."
"네, 여우씨. 네?"
"비 오는데 비맞고 다니면, 이즈미쨩이 거슬린다고 매정한 말투로 막~ 쏟아낼지도~? 그리고 이거 양산이라서. 비가 많이 쏟아지면 아무래도 오래 못버티니까~ 오늘은 집으로 금방 들어가라고, 안즈쨩. 그러면 나중에 또 보자?"
안즈의 손에 양산을 쥐여주고 가벼운 윙크를 하고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얼떨떨한 안즈의 정신을 내리치려는지 굵은 빗방울이 순식간에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지독하던 더위가 그렇게 갔다.